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인권을 죽이는 법

등록 2022-03-31 16:27수정 2022-04-01 02:31

세월호 참사 7주기인 지난해 4월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7주기 기억식 및 4·16생명안전공원 선포식’에서 한 유가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세월호 참사 7주기인 지난해 4월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7주기 기억식 및 4·16생명안전공원 선포식’에서 한 유가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세상읽기] 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2014년 5월16일이었다. 세월호 참사 피해가족들과 당시 대통령의 만남이 있었다. 진상규명, 관련자 처벌, 관련 조직의 개폐 등이 얘기됐다. 피해가족들은 대통령의 발언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내용 없고 책임질 수 없는 “최선” “철저함”의 약속에 휘둘리며 한달간의 생지옥을 거쳐왔기에 아쉬움과 실망감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녹취록을 공개하며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렇게 피해가족들은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하는, 정권을 위협하는 불순세력이 되어버렸다. 권력의 세월호 참사와 그 피해가족들과의 ‘전쟁’이 청와대, 국가정보원, 군까지 나선 낙인찍기, 정보 조작, 여론 조작, 조직 파괴, 사찰 등 인권을 죽이기 위한 모든 방법이 총동원되며 시작됐다.

인권이 문제가 될 때는 다수가 반대하고 권력이 불편해할 때이기 때문에 대선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특히 외면받았던 것 같다. 인간에 대한, 공동체에 대한 공감의 후퇴를 목격한다. 단순한 외면이 아닌 인권에 대한 공격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조짐을 마주한다.

인권은 어떻게 죽임을 당하는가. 그냥 선거 때처럼 하면 된다. 혐오와 배제, 갈라치기의 언어를 쏟아부으며 내 편인 ‘다수’를 챙기면 된다. 성차별을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들의 문제로 규정하는 국적 불명의 사고를 모든 인권 문제에 관철시키면 된다. 이 사회에 구조적 차별과 갈등은 없다. 오직 차별 ‘호소인'과 갈등유발자만이 있을 뿐이다.

어떤 것이 ‘겸손’한 것인지, 무엇이 ‘부족’했는지,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더라도 그럴듯한 말을 일단 걸고 보면 된다. 통합과 소통, 포용을 구호로 내걸고, 감히 그 실행 여부를 따지며 비판하는 이들은 공격하면 된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국민에게 다가가기’를 내세우고, 감히 실제로 다가오려는 국민은 내치면 된다.

매주 주말 시내 한복판 교통을 마비시켰던 증오와 저주 굿판의 희열을 간직한 채, 감히 집회, 시위로 교통을 방해하는 이들을 떼법세력으로 낙인찍고 증오와 저주, 조롱을 퍼부으면 된다. 감히 시도 때도 없이 헌법상 권리를 행사해 심기를 건드리고 불편을 초래하는 이들에게 ‘선제적 타격’을 가하면 된다.

‘깜둥이’도 돕는다고 자랑하고 ‘불법체류자’까지 도와줄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동네 유지들, 정치지망생들을 인권기구 대표들로 다시 앉히면 된다. 인권기구의 사상 검증과 숙청은 필수다. 법무부의 인권 부서는 잘나가는 검찰 간부들의 품격 고양 쉼터로 다시 돌려놓으며 된다. 사건을 참사로, 참사를 대재앙으로 만들었던 4·16 세월호 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주역들이 탁월한 ‘회복력'을 발휘해 다시 한자리씩을 꿰차게 하면 된다.

70년 동안 사회 발전을 가로막고 역사의 퇴보를 조장하여온 색깔론을 또다시 우려먹으면 된다. 북한 인권을 제외한 모든 인권은 빨갱이, 국제 인권 기준 운운하는 유엔도 빨갱이, ‘분단의 특수성’을 내세워 ‘케이(K)-인권’을 완성하면 된다. 재난과 참사 피해자들의 ‘순수’하지 않음과 ‘피해자다움’ 없음을 공격하면 된다. 거칠게 몰아붙이는 피해자 ‘갑질’은 정권에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미리 감지하고 이들의 무력화에 일찌감치 나서면 된다.

다시 4월이다. 참사에 책임 있는 권력들의 사과도, 가장 잔인하고 비겁했던 이들의 행태에 대한 반성도 없이 세월호 참사 후 정부가 두번 바뀌게 된다. 인권을 살리기 위한 진정성 있는 접근이 절실하다. 인권은 죽더라도 영원히 죽지는 않는다. 기억하는 한 죽음은 살아 있다. 살아 있는 죽음이 새로운 삶을 잉태한다.

“저희는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모든 사람의 안전이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국가에 대한 믿음과 사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참사로 희생된 수많은 소중한 생명들은 오랜 기간 차디찬 바다 밑에서 우리의 치부를 하나씩 하나씩 드러낸 영웅들입니다. 이들을 단순한 희생자, 피해자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영웅으로 만들 것인가는 온전히 살아 있는 자들의 몫입니다. 모두 함께 힘을 모아주십시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4·16 세월호참사 기억식 참석을 기대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