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서울 경복궁역 3호선 승강장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의 시위 장소에 참석한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자신의 안내견 조이와 함께 사과하며 무릎을 꿇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권태호 |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그동안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벌여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하철 시위를 멈추기로 했다. 대신 4월20일(장애인의 날)까지 내년도 장애인권리예산 보장과 장애인 권리 등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촉구하며 삭발 투쟁을 진행한다. 아직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이 정도까지 오는 데에도 많은 이들의 역할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공’이 제일 컸다. 그가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비난하자, 시각장애인이기도 한 같은 당 김예지 의원이 장애인 시위 현장을 찾아 무릎을 꿇었다. 나경원 전 의원 등 국민의힘 소속 인사들도 이 대표를 비판했다. 지난달 4일 “장애인 시위 처벌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하며 여론이 시소를 탔으나, ‘이준석 사태’ 이후 오히려 파국을 피했다. 29일 인수위는 시위 현장을 찾았고, 전장연 후원도 급증했다.
이 대표의 폄훼 이후,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28일 각각 사설을 통해 ‘이준석 ‘장애인 시위에 경찰 개입’, 여당 대표 자격 없다’, ‘성별 갈라치던 이준석, 이젠 장애인을 혐오 타깃 삼나’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29일 <국민일보>, 30일 <세계일보> <중앙일보> 등도 사설을 통해 정치권의 해결을 촉구했다. 최소한 언론들이 사설을 통해 ‘시민 발목잡기’, ‘볼모’ 등을 언급하진 않았다. 다행이다.
그러나 일반기사는 그렇지 않았다. “전장연과 지하철 이용 시민 간의 갈등도 점차 심화되고 있다. (…) 한 시민은 자신의 할머니 임종을 보러 가야 하는데 전장연 쪽이 열차를 막아 갈 수 없다며 현장에서 울면서 항의하는 등, 안타까운 사연도 이어지고 있다.” 기사 형태인 2월22일 서울교통공사 보도자료다. 많은 언론이 받아썼고, 유튜브 영상이 돌고, 이준석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렸다.
‘진보적 장애인 언론’을 표방하는 인터넷 매체 <비마이너>의 강혜민 편집장은 “무엇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지 짚어주는 게 언론 역할”이라며 “서울시가, 정부가 21년 동안 파기해온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구조적으로 다루는 게 언론이 할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만일 이 대표의 장애인 시위 비난 이후,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시민사회가 곧바로 제동을 걸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폭주했을지 알 수 없다. 언론 역할이 ‘장애인 시위-시민 불평-정치인 발언’ 등을 삼각대처럼 ‘균형감 있고 냉정하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에서 멈춘다면, 언론은 시민 마음속 혐오를 끄집어내는 ‘부역자’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언론은 불편부당하되, 약자 쪽으로 기울어져야 한다.
외국에 가면, 장애인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대부분 집이나 시설에 온종일 머물러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20년 등록장애인은 263만명, 전체 인구 대비 5.1%다. 2020년 신규 등록장애인이 8만명, 장애인의 88%가 질병·사고 등 후천적 요인에 의해서다. 장애인들의 애씀으로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그 엘리베이터를 비장애인과 장애인 중 누가 더 많이 이용하나. 장애인이 편하면 모두 편해진다.
김예지 의원이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가 사망하시거나 중상을 당하셔야 언론이 주목하고, 언론이 주목해야 정치권이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드린다. 정치권에서 해결하지 못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많은 분이 같이 감당하고 있다. (정치권은) 갈등을 조율하기보다 조장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정치권’에 ‘언론’을 넣어도 이상하지 않다.
4년 전, 일본 교토국립박물관 화장실에 들렀을 때, 작은 충격을 받았다. 장애인용 소변기가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늘 한쪽 귀퉁이에 있던 모습만 본 터라 신기했다. 장애인들은 몸이 불편하니 더 편히 이용하게끔 한가운데 있는 게 당연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귀퉁이로 몰지 말고, 중앙 자리를 내어주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언론이 이를 ‘조장’해야 한다.
일본 교토국립박물관 화장실. 장애인용 소변기가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장애인 시위로 몇분 늦어져도 기다릴 수 있고, 그 때문에 늦어진 동료를 기다릴 수 있는. 죽어라 내달리고, 옆에서 ‘파이팅’, ‘고고’만 외치는 게 사람 사는 사회인가. 장애인들은 더 편해져야 하고, 비장애인들은 더 불편하고, 더 느려져야 한다. 그곳이 동물의 왕국 아닌, 문명 사회다. 정글에는 언론이 필요 없다. 자신의 아내를 조롱하는 크리스 록의 뺨을 후려갈길 수 있는 ‘윌 스미스’는 많지 않다. 또 어떤 경우에도 그런 ‘비문명적’ 폭력은 안 된다. 그러니 언론이 ‘윌 스미스의 손바닥’을 대신해줘야 한다.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