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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석열 드라마’의 중대재해

등록 2022-03-30 15:47수정 2022-03-31 02:31

김용현 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오른쪽)이 지난 2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열린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관련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용현 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오른쪽)이 지난 2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열린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관련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편집국에서] 김남일 | 사회부장

드라마 <태종 이방원>은 종래 대하 사극처럼 질질 끌지 않는다.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을 눈 부릅뜨는 얼굴에서 딱 끊어 다음 주로 넘기는 식의 감질 나는 연출을 피한다. 기본 100회였던 대하 사극을 32회로 압축한 탓도 있지만 영화·드라마를 2배속으로 빠르게 보는 요즘 시청자 감각도 반영한 듯 싶다.

이성계는 방송 시작 한 달 만에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을 들이받고 고려를 엎은 뒤 조선을 창업했다. 전광석화다. 계룡, 무악, 인왕 풍수 따지며 몇 년을 보낸 천도 역시 채널 돌렸더니 이미 한양이다. 1차 왕자의 난이 끝나는가 싶더니 일주일 만에 2차 왕자의 난까지 속전속결 선보였다. 삼봉을 때려잡은 이방원이 용상에 오르자 곧바로 아내 민씨와 갈등 국면으로 육박했다. 조만간 처가 집안을 도륙하는 장면이 나와도 놀랍지 않을 속도다.

윤석열 당선자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보고 있자니 이런 속도전이 없다. 문제는 이방원급 연출 속도를 원하는 총제작자 의지와 실제 만듦새는 별개라는 데 있다. 너도나도 연출을 맡고 서로 방송분량을 달라하니, 물러나는 대통령이 한번 해보시라 해도 진도가 빠지지 않는다. 말은 계속 바뀌는데 임기응변이라 종잡기 어렵다. 차박이 유행이라지만 국가위기관리를 비상용 미니버스에서 해도 무방하다는 대사는 누가 써서 가져왔나. 게다가 쪽대본이다. 국민소통 명분은 대본에서 사라졌다. 엑스트라가 된 국민은 청기와공원에 가고 싶어 환장한 사람1·2·3을 맡게 됐다. 촬영지가 광화문에서 돌연 용산으로 바뀌니 세트는 엉망이다. 윤 당선자가 들고 나온 허술한 조감도가 대장동 아파트 분양광고였다면 줄자 든 검사가 현장검증을 했을 것이다. 허위·과장 광고에 속았다며 진작에 손해배상 판결도 났을 것이다.

윤 당선자와 문재인 정부의 기막힌 관계, 남편 대통령 만들기에 진심이었던 배우자 문제, 자꾸 부정해서 더 의심가는 풍수 논란을 드라마에 덧대 보는 호사가들이 많다. 헌법재판소가 수도 한양을 지키겠다며 헌법전 대신 경국대전을 탐독했다더니 대통령직인수위는 집무실 이전을 위해 위성사진 대신 택리지를 뒤적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선이 5년짜리 선분양-후시공 계약이라지만 착공 전부터 이런 전개는 곤란하다. “청와대는 북악산 남쪽 턱밑에 자리하고 있어서 장거리포나 탄도미사일로 공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2014년 4월 청와대를 북한 초소형 무인기가 촬영한 사실이 드러나자 <조선일보>가 북한 대남선전매체 내용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다. 북한도 거참 좋은 데 지었다며 인정한 청와대를 버리고 사방 뻥 뚫린 국방부로 집무실을 옮기려는 사람 중에는 윤 당선자 충암고 1년 선배 김용현이 있다. <조선일보>가 깡통 무인기에 나라 망할 듯 기사를 써대자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방공망에 문제가 있다”고 질책했다. 책임자 중 한명이 당시 김용현 수도방위사령관이었다. 그는 이제 대통령 경호처장, 국방장관으로 거론된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가 예고되는 상황에도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어정쩡한 기마자세 가혹행위를 당하고 있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이삿짐을 쌀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엉덩이 붙이고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여서도 안 되는 고약한 상황이다. 뭐가 됐든 어서 끝나라, 거꾸로 매달아도 간다는 국방부 시계만 바라본다. 훈시말씀으로 골백번 안보를 떠들었을 전직 장성들까지 국방부 포장이사에 찬성하고 나서니, 다리 후들거리는 군인들 입에서 똥별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달력을 보니 마침 5월10일은 귀신이 없다는 손 없는 날이다. 그래서 이삿날로 그리 고집하나 싶기도 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기관이 집무실 이전 경제효과를 3.3조원으로 계산했다. 과거 경제단체는 대체휴일제 도입으로 연간 3.3일 휴일이 늘면 일을 못해 32조원 손실이 난다며 반대했다. 1년 만에 자취를 감춘 계산법이다.

쪽대본 일일드라마라고 다 막장은 아니다. 다만 보는 사람은 2배속이어도 만드는 사람은 그러면 안 된다. 양생 기간을 두지 않는 무리한 공기단축은 중대재해로 이어지는 법이다.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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