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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봉규의 사람아 사람아] ‘원시적’ 학살에서 ‘문명화’된 대량학살로

등록 2022-03-29 18:09수정 2022-03-30 02:30

제노사이드의 기억 폴란드 _04
기차로 끌려와 화장터에서 잿가루가 되는 모든 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짧으면 두시간, 길어야 세시간이었다. 문명화된 학살의 방식으로 수용소 한곳에서만 하루에 5000명씩 죽어 나갔다. 마치 분업화된 공장처럼 대량학살이 체계적이고도 정교하게 이뤄진 것이다.

아우슈비츠 박물관은 나치가 수감자 관리 목적으로 촬영한 증명사진 원판 3만9000여장을 보관하고 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사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수용소 도착 즉시 가스실로 끌려갔다. 오시비엥침/김봉규 선임기자
아우슈비츠 박물관은 나치가 수감자 관리 목적으로 촬영한 증명사진 원판 3만9000여장을 보관하고 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사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수용소 도착 즉시 가스실로 끌려갔다. 오시비엥침/김봉규 선임기자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에는 1941년 나치 무장친위대(SS)가 찍은 관현악단 사진 하나가 걸려 있었다. 사진 설명에 ‘죄수들이 오케스트라의 행진곡을 들으며 수용소 내부로 들어오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연주자들은 악기를 전공한 수감자들이었다. 실제로 나치 시절 수많은 강제·절멸수용소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2막에 나오는 ‘개선 행진곡’ 같은 음악으로 수감자들을 맞이했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했다. 신나고 활기찬 행진곡을 들으면서 수용소로 끌려 들어간 그들의 심정을 생각하며 관람객들과 함께 아우슈비츠를 걸어 들어갔다.

아우슈비츠 전시실 통로 벽면에는 머리를 깎고 줄무늬 수인복을 입은 수감자들의 얼굴 사진들이 작은 액자에 걸려 있었는데 나는 한참을 서서 그 사진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오랜 사진기자 경험에 비춰볼 때, 그 사진들은 상당한 실력을 갖춘 사진사가 찍은 사진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치 시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도시의 번듯한 사진관에서 찍었을 법한 결과물이었고, 사진을 찍기 위해 설정한 조명, 렌즈, 앵글도 수준급이었다.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사람들의 등록카드를 만들기 위해 찍은 사진인데, 그나마 초반에만 찍었다고 한다. 수용소에서 노동과 굶주림, 병으로 얼굴이 변형되면서 수감 초기에 찍었던 사진으로는 신분을 확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왼쪽 팔뚝에 새겨진 수감번호로 얼굴 사진을 대신했다.

가스실에서 곧 죽을 사람들을 찍은 사진사는 어떤 감정으로 셔터를 눌렀을까 떠올려 봤다. 아우슈비츠를 두번 다녀온 뒤 학살의 과정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니, 대량학살 방식에 있어 시기적으로 ‘원시적’ 학살과 ‘문명적’ 학살로 제노사이드 연구자들은 구분하고 있었다. <제노사이드―학살과 은폐의 역사>를 쓴 최호근 교수도 여러 학자의 연구를 살펴보며 나치 시절 절멸수용소의 가스실을 통한 대량학살 방식을 ‘문명적’ 살인으로, 그 이전을 ‘원시적’ 살인이라고 규정했다. ‘원시적’ 학살이란 희생자들과 대면하고 접촉하는 가운데 이뤄진 학살을 뜻한다. 가해자들은 학살 대상자들을 짐승처럼 취급하면서 일대일 방식으로 살해했다. 임신한 여성이나 저항 능력이 없는 노파, 두 손을 비비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린이들의 눈을 직시하는 가운데 학살이 진행된 것이다. 그에 반해 ‘문명적’ 학살은 대상의 수집, 분류, 살해, 처리 등 모든 과정을 마치 선진국의 분업화된 돼지고기나 닭고기 공장의 공정처럼 다뤘다. ‘문명적’ 학살은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나치 시절 강제·절멸수용소의 표준 학살 공정이 되었다.

기차 기관사는 유대인 등 절멸의 대상을 유럽 각 지역에서 아우슈비츠로 실어 나르는 운전만 했고, 이발사는 가스실에 들어가기 전 머리카락만 잘랐고, 사진사는 그들의 마지막 얼굴을 필름에 담기만 했고, 가스실이 사람들로 가득 차면 독가스 담당자는 밸브 손잡이만 돌렸다. 머리를 깎고 가스실까지 들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15분에서 20분에 불과했다. 가스를 주입하고선 작은 유리창으로 모든 사람이 죽었는지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죽은 사람들에게서 금니만 뽑는 사람들이 있었고, 화장터의 운영자는 오븐에 시신이 들어가면 화구 문을 닫기만 하면 되었다. 학살의 각 공정에 관여한 사람들은 자신이 희생자들을 직접 죽인 게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런 죄책감도 트라우마도 없었다고 나중에 털어놓았다. 그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 ‘생각’은 ‘나는 나의 일만 했다’이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만 했을 뿐, 나는 직접 죽이지 않았다’는 항변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이었던 루돌프 헤스도 사형 집행을 앞두고 직접 쓴 회고록 <헤스의 고백록>에서 “학살은 직무와 명령의 이름으로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과 일본의 학살 책임자를 대상으로 열렸던 전범 재판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변명이 ‘명령이었고 직무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기차로 끌려와 화장터에서 잿가루가 되는 모든 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짧으면 두시간, 길어야 세시간이었다. 문명화된 학살의 방식으로 수용소 한곳에서만 하루에 5000명씩 죽어 나갔다. 마치 분업화된 공장처럼 대량학살이 체계적이고도 정교하게 이뤄진 것이다.

김봉규 | 사진부 선임기자
다큐멘터리 사진집 <분단 한국>(2011), <팽목항에서>(2017)를 출간했다. 제주 4·3 학살 터와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전국에 흩어진 민간인 학살 현장을 서성거렸다. 안식월 등 휴가가 발생하면 작업 지역을 넓혀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비롯한 아시아, 폴란드 전역과 독일, 네덜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등 나치 시절 강제 및 절멸 수용소 등을 15년 넘게 헤매고 다녔다.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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