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배우자 김건희씨. 공동취재사진
[편집국에서] 임인택 | 스페셜콘텐츠부장
보수 정부가 들어선다 해 여성의 삶이 돌연 추락하진 않는다. 정권이 재창출됐더라도 불법 임신중절약을 먹고 조산한 아이가 방치되어 사라지는 일은 발생했겠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3년째 입법 조치, 중절약 유통 하나 되지 않는 나라에서, 아이를 죽였다, 20대 여성 혼자 호된 매질을 감당 중이다.
한국 사회는 어쨌건 전반으로 발전해왔다. 2~3년 새 높아진 국격은 이전 국외를 가본 이들에게 마치 다른 나라 얘기처럼 감각될지 모른다. 건축가인 말레이시아 지인과 소식을 나누다 5명 중 1명이 코로나에 감염된 사정을 전하자 그가 되물었다. “아니 그건 말이 안 돼, 한국이?”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받는 무참한 성적은 따로 있다. 여성가족부가 ‘여가부 폐지’ 공약보다 더 끔찍해할,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티에프(TF)와 목표 점수까지 세웠던, 그러든 말든 다수 남성은 믿지 않겠다는 희한한 수치들. 세계경제포럼(WEF)이 해마다 발표하는 ‘성 격차지수’(Gender Gap Index)다. 경제·정치·교육·건강 부문별 남성의 기회나 지위를 1점 삼고 여성의 수준을 상대 계량해 각 국가 내 젠더 차별을 드러낸다. 잘사는 나라도 남성이 다 해먹으면 0점, 못사는 나라도 성별 몫이 균등하면 1점 만점이다. 해서 점수엔 표정이 있다. 남녀가 함께 누려 행복하면 기쁜 1점, 같이 못 누려 같이 불행하면 슬픈 1점이랄까.
코로나 팬데믹 1년을 보낸 2021년 3월 발표된 한국의 ‘성 격차지수’는 0.687점으로 156개국 중 102위였다. 남성이 누리는 기회―선진국이 되었으니 행복이라 쳐보자―의 68.7%만 여성 몫이란 얘기다. 점수는 줄곧 오른 편이다. 다만 첫 발표였던 2006년 92위, 이명박 정부 뒤인 2012년 109위, 박근혜 정부 뒤인 2017년 118위였으니 다른 나라들 젠더 격차가 좀 더 해소된 모양이다.
한국이 가장 취약한 ‘과목’이 경제 부문이다. 남녀 노동참여, 임금격차, 공직·기업 고위직 실태 등이 합산된다. 특히 공직·기업 고위직 점수는 십수년 요지부동 바닥권(2021년치 134위)이다.
이다지도 후진 나라인가, 한국이. 아니다 말하는 데이터는 많다. 미국 연구기관 ‘소셜 프로그레스 임페러티브’(SPI)가 해마다 내놓는 사회발전지수도 그중 하나다. 기본 욕구·웰빙·기회 부문 50여가지 지표값을 종합한다. 지난해 한국은 세계 17위다. 168개국에서 한국을 앞선 데는 유럽 일부와 일본,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뉴질랜드뿐이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 경제강소국 싱가포르보다 우리가 낫다고 ‘소셜 프로그레스 임페러티브’는 말한다.
17위 한국이 어중간 80위 밖으로까지 밀려난 지표는 딱 3개다. (악명 높은) 미세먼지(96위) 외 정치권력에서의 성평등(102위), 성취에서의 성평등(106위).
17위 한국의 청년발전지수(15~24살 대상, SPI의 별도 보고서)만 보면 22위(전체 163개국)로 내려간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싱가포르와는 위아래가 바뀌고, 그 사이 동유럽 국가도 낀다. 80위 바깥의 지표도 6가지로 늘고, 격차는 훨씬 벌어진다. 정치권력에서의 성평등(96위), 의회 청년 비율(104위), 자유로운 삶 결정(113위), 공기질 만족도(115위), 성취에서의 성평등(117위), 교우 관계의 기회(138위).
즐비한 세가지 지수의 함의 하나를 추리면 이렇다. 한국인 삶의 평균 수준, 그로 투사될 이른바 선진국격은 여성, 특히 미래 여성세대의 기회를 희생시키며 구축된다.
통계는 개인을 묻고 사연을 덮는다. 지난 대선일 지나 새벽 3시 반 “너무 끔찍하네요” 외마디 문자를 보내온 20대 여성의 마음도 담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젠더 공약이 혹여 어떤 평균값에 기댄다면, 성평등 특화 부처나 정책의 필요성도 저 평균값에서 구해지고, 더 많은 필요들이 숨은 디테일, 저마다 삼킨 사연들에 있다.
최선을 다해 여가부를, 여성할당제를 폐지한다는 정권에서도 성적표는 국민에게 발부된다. 직선제 이후 대개 정치적 뒷바라지만 하던 50~60대 대통령 아내들과 달리, 최초의 만 40대 커리어우먼을 ‘퍼스트레이디’로 맞는 2022년이 충분히 화제가 되질 못하는 봄을 건너는 중이다. 그 이유를 당선자 부부가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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