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김만권 |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1993년 미국의 지성을 대표하던 존 롤스가 <정치적 자유주의>를 출간했다. 이 정치철학서의 질문은 명료했다. ‘분열된 가치는 민주주의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종교개혁과 종교전쟁, 시장의 등장이란 역사적 맥락이 겹치며 서구사회에 확립된 ‘가치다원주의’라는 삶의 조건을 어떻게 다루어낼지를 묻고 있었다. 롤스의 입장은 명확했다. ‘이제 서구의 정치체는 하나의 가치 아래 결속될 수 있는 ‘공동체’가 아니다. 이제 이곳은 구성원들이 여러 다른 이해관계에 얽혀 살아가는 ‘사회’다. 더는 우리가 하나일 수 없다는 이 현실을, 사람들이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래도 살아갈 만한 것이라 여기게 하는 것이 정치철학의 임무다.’
90년대 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땐, 도대체 롤스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감이 서지 않았다. ‘우리’라는 말이 지배적인 국가에서 살다 보니 ‘때로 서로 화해조차 할 수 없는 가치다원주의’라는 조건이 무엇인지부터 체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둔감한지 몰라도 보통 사람들에게 우리의 균열은 명백히 이데올로기적인 단순한 경계였다. 아무리 깊어도 메워야 하는 균열의 전선이 명료했기에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가 도래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이런 이유로 공들여 공부했지만 ‘정치적 자유주의’는 그다지 우리에겐 쓸데가 없다고 생각했다.
20대 대선이 끝났다. 20년이 지나 이 책을 다시 펼쳤다. 난감한 질문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갈라진 마음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그 갈라진 마음이 도저히 화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걸까?’ 적어도 내게 20대 대선은 기이한 선거였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들과 양대 공당이 세대와 젠더를 버젓이 가르고 혐오, 차별, 분열을 아무렇지도 않게 조장하고 있었다. 이주민 및 외국인 혐오는 덤이었다. 심지어 언론도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이 선거를 지배하는 것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갈라진 마음’이었다. 지독하게 갈라진 마음이 지배한 선거였기 때문일까? 정당한 경쟁에서 볼 수 있는, 예의로라도 보여야 할 승자에 대한 축하와 기대도, 패자에 대한 위로와 격려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선거 이후 있어야 할 화해와 치유의 시간이 증발한 듯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롤스로부터 찾아낸 작은 실마리는 ‘시민다움의 의무’였다. 화해할 수 없을 만큼 가치가 분열된 세계에서, 지금의 우리처럼 마음이 갈라진 세계에서 어떻게라도 함께 살아가기 위한 시민다움이란 무엇일까? 롤스는 만약 우리가 공정한 협력을 원한다면, “조건을 제안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이 조건을 받아들이는 다른 이들에게도 합당하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을 제안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최소한이나마 공통의 것을 만들어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협력을 제안하는 이는 이 공통의 것을 만들기 위해 우선 ‘다른 입장을 경청’하고 ‘손해를 감수할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롤스는 이런 시민다움의 의무가 일반 시민에까지 널리 적용되어야 하지만, 특히 엘리트 집단에는 일상의 말과 행위까지 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상에선 엘리트들이 공적인 정책을 제안하고 수립하는 일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이런 롤스의 주장은 소통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보여준다. ‘소통하다’라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 ‘communicate’의 어원을 찾아보면, 공유해서 모두에게 속하는 공통의 것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더하여 이 용어에 ‘정보를 전하다’와 ‘감정을 전하다’라는 의미가 함께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온전히 소통하기 위해선 정보를 주는 일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전해야 한다는 속뜻을 읽어낼 수 있다. 분열된 정치 세계에서 제안하는 입장에 있는 이가 ‘손해를 감수하는 태도’만큼 공통의 것을 만들고자 하는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갈라진 마음’을 치유하고,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우리 모두에게 속하는 공통의 것을 만들기 위해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정치의 본질이 불화일 수 있어도 정치의 지향은 합의라는 것을 보여줄 자세가 되어 있는가? 지도자들로서, 당선자와 현 대통령이 만나지 못하고, 용산만이 소통할 길이라 고집하고, 끊임없는 젠더 분열에다 장애인의 이동권까지 갈라치기하는 현실에서 이렇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