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술로 개발한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지난해 10월21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사진은 누리호 발사 장면 53장을 합성해 만들었다. 고흥/사진공동취재단
심채경 | 천문학자
독일 밴드 네나는 ‘99 루프트발롱스’(99 Luftballons)라는 곡으로 오래 기억되고 있다. 이 노래는 아직 독일이 분단 상태였을 때, 수많은 풍선이 떠올라 베를린 장벽 너머로 날아간다면 어떨까 상상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노래 속에서는 경계를 넘어 날아오는 아흔아홉개의 풍선을 낯선 물체로 오인한 군이 방어를 위해 공격을 단행하고, 인접 국가의 또 다른 오해로 이어진다. 그렇게 촉발된 전쟁 끝에는 승자도 없이 폐허만 남는다.
대학원생 시절, 처음으로 국외 학회에 참석하러 갔을 때였다. 학회에서 발표할 포스터를 둘둘 말아 넣은 기다란 원통을 둘러메고 입국심사대에 서니, 피로가 섞인 듯 살짝 미간을 찌푸린 심사관의 표정에 내가 불순한 목적으로 온 것도 아닌데 마음이 자꾸만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그 긴장은 곧 사라졌다. 방문 목적을 물었을 때 천문학회에 참석한다고 답하자 심사관은 다정한 미소를 짓더니 두말 않고 입국 허가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 뒤로도 어느 나라에 가든 행성과학 혹은 달과학 학회에 간다고 하면 조금의 지체도 없이, 학회에 일반인을 위한 행사도 있냐는 등의 친근한 농담이 가미된 배웅을 받으며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입국 심사관들이 늘 위압감만 풍기는 사람들은 아니다. 입국하려는 자가 천문학자가 아닌 무엇이었더라도, 범죄를 저지르거나 불법으로 체류할 낌새가 없는 한 친절히 대해주는 심사관들이 많을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학회에 참석하는 천문학자라는 걸 알고 나면 그들은 유독 상냥했다. 우주를 연구한다니, 일견 이 세상과는 하등 관련 없어 보이는 것을 순수하게 탐구하는, 그래서 국가는커녕 지상의 어떤 것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 조용하게 정신 나간 자에게 입국을 불허할 필요는 없다는 것일까.
그러나 우주를 연구하는 것이 항상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연구자라는 직업 나름의 괴로움은 차치하더라도, 우주라는 이름은 밤하늘의 은하와 별과 행성과 달과 소행성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지구 밖에 거대한 망원경을 띄울 때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공위성이나 우주망원경, 탐사선을 쏘아 올리는 것은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발사하는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소행성과 혜성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하늘 위로 날아다니는 인공 물체를 식별해 내는 기법과 맞닿는 데가 있다. 수명을 다한 인공위성이나 떨어져 나간 부품을 격추하거나 궤도를 바꾸도록 하는 기술은 우주쓰레기를 치우는 데만 유용한 게 아니다. 우주탐사선이 지구와는 사뭇 다른 극한의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원자력 전지는 핵무기 원료를 사용해 제작하기 때문에 아무나 개발하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아직 화성의 돌에 구멍을 뚫거나 명왕성과 그 친구들의 근접 사진을 찍으러 가지 못한 데에는 그런 이유도 아주 조금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기술이 필요하다. 한국산 우주망원경도 띄우고 달에 착륙선도 보내려면, 지구 가까이를 스쳐 지나가는 소행성 곁을 따라다니며 지구와의 근접 조우 전후에 소행성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자세히 관찰하려면, 우리도 그럴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부족한 부분을 국제 협력으로 채울 수도 있지만, 한쪽에 너무 많이 기대서는 바르게 설 수 없다.
우주를 자유롭게 탐사하겠다는 아찔하게 높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리는 동안 우리가 갖추게 될 여러 가지 능력은 분명 다른 분야에도 무척 유용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우주라는 이름을 국방색으로 물들일 필요는 없다. 참호는 원래 위장하는 것이다. 지구 위의 자연 지형지물에는 국방색이 제격이지만 지구 밖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
나는 가끔 우주탐사가 아흔아홉개의 풍선이 되어 날아가다 하릴없이 터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한다. 우주라는 거대한 자연을 탐구하는 것은 소수의 천문학자끼리만 누리는 행복이 아니다. 그간의 결코 짧지 않은 우주탐사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인류의 활동 범위를 지구 밖 태양계 저 멀리까지 넓혔고, 별과 은하의 생성과 소멸,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물질의 존재, 우주의 탄생과 역사를 논하는 지적 생명체로 변모했다. 우리의 문화와 예술, 상상력의 세계는 우주만큼이나 확장되었다. 우주는 아무리 커져도 결코 터지지 않는 풍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