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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근혜 노동개혁의 추억

등록 2022-03-23 19:45수정 2022-03-24 02:31

2016년 10월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노동개악·성과퇴출제 폐기! 공공성 강화! 생명·안전사회 건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16년 10월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노동개악·성과퇴출제 폐기! 공공성 강화! 생명·안전사회 건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편집국에서] 전종휘 | 사회에디터

“정규직이 과도한 보호를 받다 보니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기업이 겁이 나서 정규직을 못 뽑는 상황이다.”

2014년 11월 나온 당시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의 ‘정규직 과보호’ 발언은 집권 2년차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는 신호탄이었다. 60살 정년을 보장하고, 노동자 정리해고 때 일정한 사유를 갖추거나 해고 회피 노력을 하도록 하는 제도가 노동시장에서 정규직 중심의 고용 경직성을 과도하게 높이는 바람에 기업들이 신규 채용에 나서지 않고 고용률이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니 그 질서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를 위해 직장에서 저성과자 해고를 쉽게 하고 공공기관과 민간 부문의 연공급 중심 임금체계를 성과와 직무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이후 진행된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이 결과적으로 실패한 원인은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와 ‘갈라치기’ 전략 탓이 컸다. 당시 정부는 사용자단체, 한국노총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기구인 노사정위원회를 테이블 삼아 타협을 밀어붙였다. 간난신고 끝에 2015년 9월 이뤄진 합의문은 죄다 노동자 쪽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떠받치는 하부구조라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의 대기업 하청화, 대기업의 이윤 독점 같은 문제들엔 실행력 있는 해소책을 담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탄생한 박근혜 정부였는데도 그랬다.

석달 뒤 최경환 장관은 새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경제 체질 개선의 최우선 과제로 ‘노동 유연성 제고’를 제시했다. 유럽 국가들이 도입한 ‘유연안정성’은 해고 등 노동의 유연화와 동시에 실질적인 사회안전망 구축, 철저한 직업훈련 등 두 날개로 버티는 개념인데, 정부는 안정성은 쏙 빼고 유연화만 강조했다. 청년 일자리를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며 기업들이 정년을 앞둔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도록 해 세대 간 갈등 조장에도 나섰다. 저성과자 해고와 노동자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이른바 ‘양대지침’ 도입은 박근혜 노동개혁의 정점이었다.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부르고 마침내 한국노총이 대타협 파기 선언에 이른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 혼란이 일었으나 정작 일자리 양극화 문제는 여태껏 별다른 해소의 기미가 없다.

당시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으로서 박근혜표 노동개혁을 이끈 김현숙 숭실대 교수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이끄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책특보로 돌아왔다. 김 특보는 8년 전 예비비를 끌어다 경제신문 등에 돈을 주고 기업 편향의 노동개혁을 부르대는 기사를 쓰게 하고 노동단체를 압박하기 위한 목적의 보수청년단체 기자회견을 조직한 사실이 나중에 고용노동부 자체 조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향후 윤석열 정부가 그릴 노동개혁의 밑그림과 조각 단계에서 그의 거취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이미 인수위에선 비정규직 처우 개선 정책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을 검토 중이라는 언론보도가 흘러나온다. 얼마 전엔 국내 경제학자 31명 중 80%가 안정적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해야 하고, 유연성 확대가 가장 시급한 분야로 ‘노동자의 이직, 해고의 용이’를 꼽았다는 발표가 나왔다. 여기저기서 조금씩 노동개혁의 군불을 때는 모양새다.

박근혜 참모 재활용에 이어 청와대에는 한 발짝도 들여놓지 않겠다거나 누구도 돌려달라고 하지 않은 청와대를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며 취임도 하기 전에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를 두고 현 정부와 싸우는 윤석열 당선자의 모습에서 좁은 인재풀과 오기가 엿보인다. 코로나로 인한 해고와 살림살이 악화 같은 민생 문제 해결보다 집무실 이전이 더 중요한 문제인가.

노동자의 생존권과 직결되고 계급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개혁이 성공하려면 끈질긴 대화와 설득, 조정, 경청의 자세가 필요하다. 새 정부가 노동·복지 등 사회 개혁도 이런 식으로 추진하면 온갖 갈등만 양산하고 실패한 박근혜 정부의 뒤를 밟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그랬다간 국민만 불행해지는 탓이다.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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