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현지시각)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 뉴욕증권거래소 티브이(TV) 화면에 비치고 있다. 연준은 이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다고 발표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세상읽기] 박복영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달간 이어지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배럴당 90달러였던 국제 유가는 한때 130달러까지 치솟았다. 곡물과 니켈 등 금속 가격도 급등했다. 밀 가격은 전쟁이 난 지 한달 사이에 30%가량 상승하였다. 작년부터 시작된 물가 오름세가 더 가팔라지고 있는 것이다.
전쟁과 같은 이유로 원자재 공급에 차질이 발생해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 정책 대응을 하기가 난감해진다. 경기 과열로 인한 인플레이션이면 금리를 올려 경기 과열과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경기 악화도 같이 수반한다. 지난주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의 경기 전망치 조정이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높이면서 성장률 전망치는 크게 낮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화정책은 경기 둔화를 막을 것인지, 아니면 물가 상승을 억제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 정책당국도 곧 두 지표를 모두 나쁜 방향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화당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높아진 인플레이션 압력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더 가속화해야 할까, 아니면 경기 진작을 위해 계획했던 금리 인상을 중단하거나 늦추어야 할까? 4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아마도 총재 공석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1970년대의 두 차례 석유파동 당시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는데, 두 차례의 정책 대응은 정반대였다. 1973년 10월 중동전쟁으로 석유 수출이 중단되자 국제 유가는 몇달 사이에 4배가 폭등했다. 이 1차 파동 때 미국 등 대부분 나라는 인플레이션 억제 대신 성장을 택했다. 미국에서는 석유파동 전부터 이미 물가가 강한 상승 압력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둔 닉슨 정부는 통화 긴축을 반대했다. 일화에 따르면 연준 고위급 인사가 백악관에 보고하러 갔을 때 대통령 최측근이,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면도할 때마다 오늘 통화 공급을 늘리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라고 했단다. 석유파동으로 인플레이션이 12%까지 치솟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연준은 기준금리를 고작 0.5%포인트 인상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인플레이션 둔화 조짐이 잠시 보이자 그마저 다시 내렸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당시 연준에서 일했는데, 연준은 물가 상승에도 금리를 올리지 않을 핑계를 열심히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개발한 개념이 근원물가지수라는 것이다. 즉 석유나 농산물같이 경제 외적 요인으로 가격이 변하는 항목을 제외하고 보면 인플레이션이 그리 심하지 않다는 논리였다.
이런 소극적 대응으로 물가상승률은 줄곧 5%를 넘었고, 1978년 여름에는 10%마저 넘었다. 이때 이란 혁명으로 2차 석유파동이 발생해 유가는 다시 3배가 뛰었다. 재선을 앞둔 카터 대통령은 폴 볼커를 새 연준 의장으로 임명했다. 성장과 물가 안정, 양자 중 볼커가 택한 것은 후자였다. 그가 사용한 수단도 전례가 없었다. 금리 대신 통화량 자체를 줄여서 물가를 잡겠다는 것이다. 가격 대신 수량을 제한하겠다는 뜻이다. 앞의 잘못된 조치로 물가 인상 심리가 높아진 상황에서 기대를 반전시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는 10년 이상 계속된 인플레이션을 잡고 연준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오미크론 확산으로 우리 성장은 당초 예상보다 둔화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에 풀린 유동성으로 자산 시장마다 거품이 형성되었다. 가계부채는 위험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정부교체기에 부동산 가격은 다시 꿈틀대고 있다. 고용 회복세가 강한 것은 다행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선택해야 하는 목표는 마땅히 인플레이션 위험의 억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새 정부가 공약한 대로 대규모 추경마저 이루어진다면 추가로 상당한 물가 상승 압력이 나타날 것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도 취임 초 뒤늦은 재정 확장으로 지금 7%대의 인플레이션 위협에 직면해 있다. 지금 세계경제는 2년간의 코로나 상황에서 유동성이 넘쳐 부채와 거품이 쌓여 있는 상태다. 거기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플레이션 압력마저 고조되었다. 글로벌 거시경제 구조가 상당히 불안정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우리 경제의 위험 요인을 최대한 축소하고 안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리해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