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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슈퍼우먼은 없다

등록 2022-03-15 18:52수정 2022-03-16 02:31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황춘화 | 사회정책팀장

고열과 구토를 동반하는 파라 바이러스 그리고 장염이 잇따라 둘째 아이의 어린이집을 휩쓸었던 지난해 말. 어린이집 엄마들 단톡방이 난리가 났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막 직장에 복귀했는데, 회사에 가는 날보다 연차를 써야 하는 날이 더 많았던 까닭이다. 둘째의 어린이집 출석부를 펴본다. 한달 평균 결석일이 5일 남짓이다. 맞벌이 부부는 버틸 재간이 없다. 지방의 부모님이 소환되고 나서야 위기는 겨우 극복된다. “하나도 감당이 안 되는데 일하면서 어떻게 둘 키워요? 언니는 진짜 슈퍼우먼입니다.” ‘신입 워킹맘’들은 애 둘 ‘경력 워킹맘’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어휴~ 둘째는 안 낳을래요.”

“혹시 육아휴직 소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 지난 2일 대통령 선거 마지막 티브이(TV) 토론의 한 장면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게 육아휴직 대상자의 몇퍼센트가 실제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있는지 물었다. 윤 후보가 저출산 대책으로 현행 1년인 육아휴직 기간을 1년6개월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는데, 기간 연장이 저출산 해법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기 위함이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0년 육아휴직 소진율은 24.2%에 불과하다. 여성의 63.9%는 육아휴직을 사용하는데 남성은 3.4%만이 육아휴직을 한다.

3.4% 수치는 주변을 둘러보면 명확해진다. 두 아이의 친구들 중 아빠가 육아휴직을 한 사람은 한명도 없다. 손에 꼽히는 대기업이나 유명 외국계 기업에서 잘나가던 여성이 아이를 낳고 독박육아를 한다. 슈퍼우먼이 돼보려고 돈도 벌고 애도 보다가 평범한 인간임을 깨닫고 결국 사표를 낸다. 아빠는 최선을 다해 육아를 도왔다고 주장하지만, 그게 바로 문제의 시작이다. 주 양육자가 돼보지 못한 남성에게 육아는 ‘내 일’이 아닌 ‘돕는 일’에 불과했다. 더 많은 아빠의 육아휴직이 저출산 해법으로 꼽히는 이유이다. 이 후보는 “아빠들도 육아휴직을 할 수 있게 자동등록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윤 후보는 “강제로 하자는 거냐”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돌봄 전담→경력단절→저출산’ 고리를 끊기 위해 아빠들을 육아 현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논의되기 시작한 제도가 ‘남성 육아휴직 의무할당제’다. 불이익이 두려워 육아휴직을 하지 못하는 아빠들을 위해, 육아휴직을 기본값으로 강제하자는 제안이다. 북유럽의 노르웨이·스웨덴 등은 오래전부터 남성 의무할당제를 도입하고 있다.

당혹스럽다는 윤석열 당시 후보의 반응과 달리 2016년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송희경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부부 근로자의 육아휴직 기간을 24개월로 하되, 남성이 3개월 이상의 육아휴직을 해야 하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선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부부가 각자 3개월씩 반드시 육아휴직을 사용해야 하는 ‘슈퍼우먼 방지법’을 처음 내놓았다. 당시 심 후보는 왜 여성은 회사 일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집안일도 잘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슈퍼우먼이 사라져야 출산율이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내가 아이 둘을 낳고도 직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슈퍼우먼이어서가 아니라 남편의 육아휴직 덕분이다. 남편은 육아휴직 이후 밥벌이의 고단함 대신 ‘밥하기’의 괴로움을 호소한다. 집안일은 끝이 없다며 한숨이 늘었다. 비로소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육아 동반자가 됐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한 아이가 온전히 성장하려면 지역사회가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이다. 아무리 슈퍼우먼인들 혼자 온 마을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아이를 키우는 데는 동반자가 필요하다. 윤석열 당선자가 육아휴직에서 소외된 75.8%에 주목하고, 남성 육아휴직 할당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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