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의 G2 기술패권 _14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 50년인 올해 미국과 중국은 ‘세계를 바꾼 한 주’를 축하하는 기념식을 열기는커녕 오히려 전략광물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디지털 기술과 신재생에너지의 연료인 희토류를 비롯한 전략광물을 확보·통제하려는 미-중 경쟁은 양보할 수 없는 각축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1일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 50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냉전의 절정기였던 1972년 2월21~28일 닉슨이 중국에 머무는 동안 두 나라는 20여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중국과 대만은 나뉠 수 없는 하나이며 중국 정부는 오직 하나라는 원칙)에 합의하는 ‘상하이 코뮈니케’에 서명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올해 두 나라는 ‘세계를 바꾼 한 주’를 축하하는 기념식을 열기는커녕 오히려 전략광물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지난달 8일 대만에 1억달러 규모의 패트리엇 미사일 판매를 승인하자, 중국은 21일 이 미사일방어체계를 생산하는 방산업체 록히드마틴과 레이시온 2곳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며 “두 회사는 반외국제재법에 따라 제재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6월 발효된 반외국제재법은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외국 개인·기업에 대해 중국 내 자산 동결, 중국인과 거래 금지 등의 제재를 부과한다. 중국과 두 방산업체가 무기 거래를 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제재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두 방산업체는 중국으로부터 희토류 등 광물을 수입해 첨단무기 생산에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외국제재법이 엄격히 적용된다면 두 방산업체의 무기 생산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마침 21일이 공휴일이었다. 하루 뒤인 22일 미국 백악관은 전략광물 미국 내 생산 방안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했던 때라 바쁜 와중에도 이날 에너지부 장관, 국방부 차관과 미국 내 유일한 희토류 생산업체인 엠피 머티리얼스(MP Materials) 대표 등이 참석한 화상회의까지 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리튬·흑연·희토류 등 전략광물을 언급하면서 “이 광물들은 휴대전화·컴퓨터·가전·전기차·배터리·태양광패널·풍력터빈 등을 구동시킨다. 이런 광물이 없으면 미국은 작동할 수 없다”며 “그런데 우리는 이런 광물의 거의 100%를 중국·오스트레일리아·칠레 등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날 중국은 이런 광물의 세계시장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다”며 “우리가 이런 광물을 중국에 의존한다면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미래를 건설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국가 위기 때 군사·산업·민간 필수재에 필요하지만 자국 내에 존재하지 않거나 충분한 양이 생산되지 않는 광물을 전략광물이라고 지칭한다. 미국은 35개 광물을 전략광물로 지정해놓았으며, 전략광물에서 파생된 원자재까지 포함해 283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관할이 여러 부처에 걸쳐 있지만 국가 안보 차원에서 다루는 만큼 국방부가 이를 총괄한다. 35개 전략광물에는 희토류와 니켈·리튬·알루미늄·코발트·티타늄·흑연 등이 포함돼 있다. 이 중에서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광물은 희토류다. 희토류는 네오디뮴 등 17종의 원소를 지칭하는데 부존량이 매우 적어 희토류(rare earth)라는 이름이 붙었다. 희토류의 독특한 화학적·전기적·광학적 특성이 소재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도는 영구자석·연마제·촉매·합금 등 분야에 폭넓게 사용되며,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분야는 영구자석이다. 황현수 신영증권 원자재 담당 애널리스트는 “영구자석은 자성을 영구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석을 뜻한다”며 “이 자석의 강력한 자력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모터들은 크기가 작고 순간적으로 작동하는 파워가 강하기 때문에 전기차 구동모터나 풍력발전용 터빈의 소형화·경량화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수요 증가에 따라 최근 각광받고 있다.
특히 네오디뮴을 활용한 영구자석은 컴퓨터 하드디스크, 자기공명영상(MRI) 등 첨단제품뿐만 아니라 첨단무기 개발에도 필수적이다. 미 의회조사국은 보고서에서 희토류의 군사 응용 분야로 미사일 유도, 항공기·미사일의 디스크 드라이브 모터, 레이저, 위성통신, 잠수함 음파 등을 제시했다. 이를 활용한 첨단무기로는 F-35 스텔스 전투기, 토마호크 미사일, 프레더터 등을 예시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미국 첨단무기의 공급이 본질적으로 중국의 지속적인 희토류 생산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치명적인 리스크이며, 미-중 간 패권 전쟁 발발 시 결과를 가를 키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 국방부는 그동안은 이런 위험성에 대해 희토류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는데 지난해 6월 공개한 ‘공급망 보고서’에서는 미국이 현재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보고서는 “국가 긴급사태가 발생할 경우 모니터링하고 있는 283개 광물 중 53개가 공급 부족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 이유로 외국으로부터 광물 공급선 차단을 꼽았다. 보고서에서 지목한 공급 부족 광물에는 영구자석도 포함돼 있다.
현재 미-중의 희토류 세계시장 점유율은 현격하게 벌어져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 자료를 보면, 2021년 기준 전세계 희토류 원광 생산량은 28만톤이다. 중국이 16만8천톤(60%)으로 압도적인 1위이며, 이어 미국 15.4%, 미얀마 9.3%, 오스트레일리아 7.9% 등 순이다. 특히 중국의 영구자석 시장점유율은 87%에 이른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중국은 채광, 분리, 추출, 고순도 완제품 제조 등 희토류 공정 모든 단계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에 미국은 자국 내에서 채굴된 희토류 원광을 환경오염과 중간 공정시설 미비로 중국으로 보내 가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희토류 수입량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약 76%에 이른다. 중국이 없으면 미국의 희토류 생산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보여준다.
희토류의 전략적 가치를 먼저 깨닫고 국가 차원의 지원 정책을 편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2002년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고, 외국인의 희토류 광산 투자를 금지했다. 2010년부터 수출 쿼터를 급격히 축소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5월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제한하는 등 제재를 본격화하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장시성에 있는 희토류 생산·가공업체를 방문해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관영매체들은 희토류 수출 제한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했다. 2020년에는 미국의 기술수출 통제에 대응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수출통제법을 제정했으며, 지난해 6월에는 반외국제재법까지 발효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중국 내 국영 희토류 기업들을 합병해 세계 최대 희토류 국영기업인 중국희토그룹유한공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중국 국무원 산하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다. 희토류 시장을 당국이 통제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1952년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패스 광산에서 희토류 채굴을 시작한 미국은 1960~80년대에는 세계 최대의 희토류 생산국이었다. 그러나 환경문제와 중국의 저가 공세 등으로 2002년에 미국 내 채굴을 중단했다. 2010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은 희토류의 전략적 가치를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됐다. 당시 중국이 희토류를 자원무기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2017년 엠피 머티리얼스가 마운틴 패스 광산을 인수해 2018년부터 생산을 재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발표한 전략광물 미국 내 생산 방안에서 영구자석 공급망의 모든 단계를 미국 내에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엠피 머티리얼스는 2024년까지 7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며, 정부도 여기에 3500만달러를 지원한다.
그러나 전략광물을 개발하는 데는 최소 10년 이상의 긴 시일이 걸린다. 오랜 개발 기간과 막대한 자금 소요, 기술적 도전 등으로 인해 성공 확률도 매우 낮다. 미 국방부가 작성한 공급망 보고서를 보면, 2011년 30개국의 180개 기업이 추진한 275개 희토류 개발 프로젝트 중에서 지난해 4월 현재 2개 프로젝트만이 생산 단계까지 진입했으며, 다른 2개는 시험생산 단계에 있다. 지난 10년간 성공 확률이 불과 1.5%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는 미국이 희토류 개발에 적극 나서더라도 상당 기간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19세기 증기기관의 연료는 석탄, 20세기 내연기관의 연료가 석유였다면, 21세기 디지털 기술과 신재생에너지의 연료는 희토류를 비롯한 전략광물이다. 전략광물을 확보·통제하려는 미-중의 경쟁은 양보할 수 없는 각축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현 | 논설위원. 1994년부터 경제·국제·사회부에서 주로 일했으며, 워싱턴특파원·국제부장·경제부장·부국장 등을 지냈다. 특파원 시절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산복합체 등을 취재했으며, 2015년 미국의 사드 배치 의도를 폭로한 보도로 관훈언론상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첨단기업과 금융회사들의 발전상을 현장 취재했다. G2의 패권 경쟁이 한국 경제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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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수출 제한 조치 발표 직후인 2019년 5월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장시성의 희토류 생산·가공업체를 방문해 희토류를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라고 말했다. 희토류의 자원무기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신화통신>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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