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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성격유형 안 믿는 유형

등록 2022-03-14 18:42수정 2022-03-15 02:31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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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승훈 | 종교학자·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나는 ‘아이엔티피(INTP)’다. ‘엠비티아이’(MBTI, 성격유형검사)를 안 믿는 유형이다. 자신과 타인의 성격에 관심을 가지고 각자의 성향 차이를 이해하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취업 시장에서 기업들이 특정한 성격 유형을 가진 사람들을 선호하거나 배제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슬슬 위험성을 느낀다. 이런 경향이 비과학적일 뿐만 아니라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왜 이런 성격 유형 이론들에 끌리는지, 나아가 인간은 왜 이렇게까지 인간을 ‘분류’하는 데 몰입하는지 생각해보자.

어떤 점에서 엠비티아이는 좀 더 전통적인 체계인 사주명리학이나 오랜 기간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어온 혈액형 성격론의 대안처럼 보인다. 점술 체계는 대단히 다양하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초월적 존재의 의지나 운명의 흐름을 포착해서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영매나 신점만이 아니라 카드 등의 도구를 이용하는 형태도 있다. 시초(蓍草·톱풀)를 이용하는 주역도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점성술이나 사주명리학처럼 사람이 태어날 당시의 천체 배치나 기운이 그 사람의 일생을 결정짓는다는 믿음 체계다. 성격 유형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후자의 경우다. 성격이 세계를 인식하고 타자와 관계를 맺는 반응 형태라면, 타고난 성격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믿음은 꽤 설득력이 있다.

근대 이후 등장한 혈액형 성격론은 이런 직관적인 믿음을 이용한다. 태어난 시점 같은 모호한 기준보다는 객관적인 검사를 통해 밝혀지는 지표 쪽이 ‘과학적’으로 보였던 탓이다. 우리가 성격이라고 불러온 정신적 성향들이 상당 부분 외모처럼 유전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혈액형은 수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연히 먼저 알려진 유전형일 뿐 성격과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혈액형에 대한 지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것을 특정한 심리 유형과 연결 지었을 뿐만 아니라, 직업 적성이나 궁합에까지 적용하였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전통적으로 점성술이나 명리학이 지배했던 영역이다.

인간은 다른 이들을 분류하려는 강력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에밀 뒤르켐과 마르셀 모스는 인간 집단에 대한 사회적 분류가 모든 분류의 기반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누군가가 친구, 연인, 혹은 직장 동료로 받아들이기 적합한지를 파악하는 것은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지만 늘 어려운 일이다. 무한히 다양한 인간을 비교적 적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만 있다면 우리는 훨씬 간편하고 안전하게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것은 대단히 실용적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대략 들어맞으면 충분할 뿐 과학적으로 검증될 필요는 그다지 없다. 물론 권력관계 속에서 이런 인간 분류는 위험한 방식으로 남용될 수 있다. 애초 엠비티아이는 2차 대전 이후 여성의 사회 진출과 참전자 재취업이 늘어나면서 유용한 적성검사 도구로 소개되었다. 직업 선택을 위한 교육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신의 성향을 성찰하고 구체적인 유형으로 언어화해 보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끔찍한 것은 그것이 기업 쪽에서 노동자를 분류, 선발, 통제하려고 이용할 때다.

인간 분류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인간의 속성 중 특정 측면을 과장하여 다른 요소들과 연결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 분류는 흔히 유형을 만드는 집단, 특히 권력을 가진 쪽에 유리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인종주의는 타인의 피부색, 출신지, 외모 등을 바탕으로 소수자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정당화한다. 여성혐오는 특정한 성별 범주에 온갖 요소들을 결부시켜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한 무리의 비인간적인 대상으로 만드는 인식 형태다. 대선 시기 막바지에 유행한 “1번남, 2번남” 밈은 투표 성향이라는 하나의 속성이 외모나 성격과 연결된다는 이분법적인 인간 분류를 만들어냈다.

현실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성격 유형론, 좀 더 일반적으로는 인간 유형론이 가지는 유혹은 그것이 타인이라는 현실을 덜 위험하고 통제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리라는 믿음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우리는 즉석에서 간편하게 타인을 분류할 수 있는 병아리 감별 방식의 유형화 대신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한 더 많은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 이해의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오해하고 상처받지만, 소량의 정보만으로 상대를 이미 파악했다고 섣불리 믿어버리는 것보다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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