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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젠더 프리와 문화다양성

등록 2022-03-10 18:38수정 2022-03-11 02:31

[삶의 창] 정대건 | 소설가·영화감독

최근 처음으로 원작자가 되는 경험을 했다. 나의 첫 장편소설인 <지브이(GV) 빌런 고태경>이 연극으로 무대에 오른 것이다. 은 데뷔작을 말아먹은 30대 청년 감독 조혜나와 만년 감독 지망생인 50대 중년 고태경의 이야기다. 원작인 소설에서 조혜나는 여성이고, 고태경은 남성이다.

연극에서는 고태경의 성별이 50대 여성으로 달라진 것을 알게 됐다. 연출가는 내게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러한 설정의 변경은 각색자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에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고민했던 설정의 다른 버전을 보게 되니 더 귀한 기회라고 여겼다. 고태경의 성별이 바뀐 것에 대해 흥미로운 일이라며 친구에게 말하자 연극 쪽에서는 ‘젠더 프리 캐스팅’이 이미 몇년 전부터 흔하다고 했다. 연극과 뮤지컬에는 문외한이었기에 공연계에 이런 흐름이 있는 줄 몰랐다.

젠더 프리 캐스팅은 배우의 성별과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캐스팅을 말한다. 공연의 기획 단계부터 배역에 젠더를 정해놓지 않거나, 성별이 고정된 역할이더라도 이를 연기할 수 있다면 누구나 캐스팅하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의 연인, 딸, 엄마 역할로만 존재하는 남성 중심 서사의 작품이 대다수인데, 이러한 남성 중심 공연계의 성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되는 추세다. 고뇌하는 햄릿, 엄마가 죽었는데도 눈물 흘리지 않는 뫼르소가 여성이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이 있는가?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나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믿는다.

나 또한 인종·젠더에 대한 선입견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번 사고의 틀을 깨준 독서 경험이 있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블러드차일드>라는 단편소설을 읽을 때였다. 소설의 초반부에 화자가 다른 인물을 형, 누나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젊은 남성 화자로만 인식했다. 나중에야 작가가 흑인 여성이라는 정보를 알게 된 뒤 충격을 받았다. 나는 막연하게 미국의 백인 남성 화자를 상상하며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소설을 읽으면서 작품의 화자를 작가에 대입하는 건 일차원적 독법이다. 그러나 피부색이나 인종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상상의 기본값에 대한 충격이었다.

여성 화자로 소설을 몇 편 썼다. 첫 책을 내고 왜 남자인데 여성 화자로 소설을 썼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는 여러 이유를 들었다. ‘나에게서 거리를 두는 게 필요했다. 픽션이라는 장치가 필요했다.’ 성별에 따라 인물이 겪는 일도 다르고 맺는 관계성에 대한 차이도 존재한다. 나는 여성이 조력자나 적대자가 아니라 주체적 화자로 등장하는 것이 오히려 대상화의 함정에 덜 빠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자의 당사자성을 과하게 주장한다면 세상의 픽션 장르는 전부 사라지고 에세이만 남아야 할 것이다. 남성이 아닌데 남성 화자를 쓰거나, 퀴어가 아닌데 퀴어 이야기를 쓰거나, 살인자가 아닌데 살인자 이야기를 쓰거나, 대통령이 아닌데 대통령 이야기를 쓰거나, 전부 가능하다. 픽션을 쓰는 작가에게 그런 질문은 참 이상한 질문이다. 작가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고양이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 야구 배트가 될 수도 있다.

영화, 드라마, 게임 등 여러 콘텐츠에서도 젠더, 인종,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지양하고 문화다양성을 존중하는 흐름은 주류가 되었다. 이에 대해 과도한 피시(PC·정치적 올바름)가 콘텐츠를 망치고 있다는 불만을 가진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결국 다양성을 보편화하는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소설에서도 여성 화자가 등장하면 또 같은 질문을 받게 될까. 언젠가는 그런 질문 자체가 촌스럽게 여겨져서 사라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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