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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상균의 메타버스] 도시에 대한 집착이 사라질까

등록 2022-03-10 18:38수정 2022-03-11 02:31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왜 도시를 좋아할까? 왜 도시에 모여 살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많은 것들을 낮은 비용으로 공유한다. 대도시를 놓고 보면 우리는 2천원이 안 되는 돈으로 거대한 지하철을 타고, 수십만 권의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에 무료로 들어가거나, 수백명의 의료 인력이 상근하는 병원을 이용한다. 소소하게는 배달 앱만 켜면 30분 안에 배달되는 음식이 수백 종은 넘는다. 이 모든 게 도시가 갖고 있는 공유의 힘이다. 거주 비용을 제외한 항목을 보면 교통, 식사, 의료, 문화 등 대부분 영역에서 도시의 삶은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둘째, 도시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 다양한 기회와 연결된다. 도시는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우리를 묶는다. 이런 연결을 통해 우리는 도시에서 다양한 꿈을 꾸고, 더 많은 성취를 이루며, 더 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여기서 언급한 공유와 연결이 있기에 도시가 더 위대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도시의 이런 공유와 연결 기능은 그 자체로 많은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다만, 사람들은 그런 공유와 연결에 담긴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에 이끌려 도시에 몰려든다.

메타버스가 확장된다면, 도시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조금이라도 줄어들까? 도시의 두 가지 장점인 공유와 연결을 토대로 풀어보자. 첫째, 물리적 도시 안에서 공유하던 것들의 상당 부분을 메타버스가 대체한다. 예를 들어, 물리적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메타버스를 통해 접근이 가능하다. 심지어 내 입맛에 맞게 도서관과 박물관을 꾸밀 수도 있다. 의료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원격으로 전환되면서 근거리에 병원이 없어도 불편함을 덜 느끼게 된다. 도시에서 누렸던 여러 인프라가 메타버스를 통해 공간을 초월해서 공유된다. 둘째, 메타버스에서 우리는 나이·국적을 초월한 사람과 어울리고, 무한대에 가까운 기회와 연결된다.

2021년 여름, 필자는 매우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얼마 전 강연장에서 만난 50대 교사분이었다. 그분은 강연을 들은 후 메타버스에 아바타를 만들었다. 자신의 아바타를 가지고 매일 숙제하듯이 10분이라도 여러 메타버스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한강 둔치를 옮겨놓은 메타버스에서 신기한 인연을 만났다. 어떤 아바타가 자기 곁에 다가와 말을 걸었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생각이 잘 통했다. 현실 정보를 가지고 제대로 통성명을 해보니, 같은 동네에 사는 20대 청년이었다. 내게 일부러 연락할 정도로 그분에게는 이게 특별한 경험이었을까? 저녁마다 50대 교사분은 배우자와 함께 한강 둔치로 산책을 2년 넘게 다니셨다. 그러나 그동안 자기에게 먼저 말을 걸어 온 20대 청년은 아무도 없었다. ‘내게 20대 친구가 생긴 것은 메타버스 덕분입니다’라는 인사를 내게 건네셨다. 세대와 공간을 초월한 이런 연결은 메타버스에서 점점 더 흔한 일이 될 것이다.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 사람들의 하루 생활 반경은 30㎞ 정도였다. 자동차를 이용하면서 생활 반경이 100㎞를 넘어섰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는 우리의 생활 반경을 어떻게 재편할까? 무한대에 가깝다. 서울에 앉아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페루 리마에서 업무를 볼 수 있다.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생활 반경이 무한대로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생활 반경 인식에 변화가 생기는 상황에서 도시의 가치가 지금과는 달라지리라 예상한다. 그렇다고 메타버스가 도시를 소멸시킬 리는 없다. 인간이 물리적 몸을 완전히 버리기 전까지 우리는 물리적 공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메타버스의 확장과 함께 우리는 지금보다는 물리적 도시에 덜 집착하리라 예상한다. 메타버스에만 집착하는 인류를 꿈꾸지는 않으나, 도시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메타버스가 조금은 완화해주기를 기대한다. 도시가 비춰주는 빛을 누리되, 도시로 인해 발생하는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기대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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