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달 18일 오후 대구 달성군 대실역 사거리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선거 유세를 펼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대 대선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대형 의제가 실종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정작 공동체의 오늘을 절실하게 아파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내일을 절박하게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도 지지자와 팬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표를 주기 때문이다.
박권일 | 사회비평가·<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선거가 끝났다.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후보 당선의 정치적 의미 같은 이야기는 생략한다. 전문가들이 똑 부러지게 분석해줄 것이다. 그보다 나는 이번 선거가 과연 어떤 사건이었는지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에 관심이 있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이번 선거는 상당히 높은 투표율과 함께 양강 후보가 총 득표수의 95% 이상을 갈라먹고 끝났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다. 둘 다 싫다면서, 사람들은 왜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 이토록 진심인가. 20대 대선은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이번 대선도 여느 선거들처럼 막말과 폭로의 수라장이었다. 그런데 이전과 명확히 구분되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하나는 ‘여성 배제’다. 얼마 전 <한겨레>가 적확히 명명했듯, 20대 대선은 여성 배제가 전면화한 선거다. 단언컨대 지금까지 이런 대선은 없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일부 남성의 반발을 정치세력이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여성에 대한 집단적·정치적 공격이 극에 달했다. 윤석열-이준석과 국민의힘이 선두에 섰지만, 민주당도 만만찮았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노골적으로 ‘안티 페미 이대남’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여성 배제 정치가 전면화된 배경에는 정치적 실용주의와 정치적 부족주의가 있다. 혐오와 차별이 돈이 되고 표가 된다는 것을 알아챈 정치인들이 시민을 끝없이 갈라치기하며 공화국을 ‘부족집단’으로 해체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번 20대 대선을 주도한 담론은 젠더 담론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공영 방송사 등 소위 ‘메이저 언론’은 논란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서인지 비판은 고사하고 언급하기조차 꺼려하는 듯 보였다. 오히려 <시엔엔>(CNN) 등 국외언론이 이 문제를 더 정확히 취재하고 보도했다. 이번 대선에서 벌어진 추악한 여성 배제와 이에 대한 주요 언론의 책임 방기는 똑똑히 기록되어야 한다.
이번 대선의 또 다른 특징은 ‘대형 의제’의 실종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과거 ‘경제민주화’ 같은 공동체의 미래를 제시하는 큰 미래담론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소확행 공약” 같은 생활밀착형 정책들이 자주 오르내렸다. 물론 대형 의제가 사라진 상황을 언급한 언론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배경이나 원인을 꼼꼼하게 분석한 경우는 드물었다. “왜 대형 의제가 보이지 않느냐”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서 이재명 후보 쪽은 “메가 슬로건(거대 공약)이 먹히는 시대는 끝났다”며 “지금부터는 다양한 정책 공약을 살라미 방식(과제를 세분화해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일리는 있으나, 충분한 대답은 아니다. 부족한 식견을 지적받아온 윤석열 후보야 말할 것도 없고 이재명 후보도 산적한 국가 현안에 대해 과거와 구별되는 정교한 정책을 선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기후위기와 인구절벽이라는 초대형 의제에 관한 이들의 공약은 과거의 것을 그대로 ‘붙여넣기’하거나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하는 수준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대형 의제도 없으면서 디테일한 각론도 제시하지 못했다.
과거와 똑같이 대응하면 똑같은 결과만 나올 뿐이다. 예컨대 ‘저출생’ 대책을 보자. 2020년 기준으로 15년간 225조원의 재정을 쏟아부었음에도 2021년 합계출산율은 불과 0.81명이었다. 들이붓는 돈은 점점 커지는데 수치는 해가 갈수록 점점 떨어진다. 역사상 이렇게 오랫동안, 압도적으로 실패한 정책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처참했다. 실패한 정책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와 전환이 있어도 해결을 장담하기 어려운 판에, 대선 후보들은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만 그냥 하던 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한다. 이런 안이한 대응으로 사태가 나아질 리 없다.
20대 대선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대형 의제가 실종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정작 공동체의 오늘을 절실하게 아파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내일을 절박하게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도 지지자와 팬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표를 주기 때문이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단지 내가 싫어하는 후보가 낙선하는 데서만 효능감을 느끼는 정치 때문이다. 저쪽이 더 나쁜 놈이라는 확신을 지지자에게 심어줄 수 있으면 한쪽이 쉽게 권력을 쥐는 이 지긋지긋한 기득권 양당 정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앞으로도 비호감 대선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