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10일 서울 동작구 국립 서울현충원을 참배하기 위해 걸어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정을 이끄는 대통령은 국민 절반을 선거 때처럼 ‘갈라치기’로 내칠 순 없다. ‘비호감’을 ‘덜 비호감’으로라도 바꾸려면 우선 자주 봐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 기자회견이 월례 반상회처럼 흔해빠지는 날을 기대해본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알 듯 말 듯 한 한마디 툭 던지면, ‘아랫사람들’이 “그 뜻은 이런 것”이라 해석해주는 일을 또다시 보고 싶진 않다. 구중궁궐에서 ‘하명’이나 하려고 대통령이 된 건 아니지 않은가.
정파적 보도, 불확실한 보도, 소홀한 팩트 체크, 혐오 조장 보도 등에 대해 언론도 자성하자. 그래야 대통령을 향해 ‘기자회견장에 서는 것이 국민 앞에 서는 것’이라고 좀 더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당사 앞에서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지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대 대통령 선거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0.73%포인트, 역대 가장 적은 표차다. 외형은 지지층 결집이지만, 비호감 후보에 대한 거부감 또는 위기감이 더 크게 작동했을 것이다. 어쨌든 선거는 끝났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이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절반의 유권자들의 마음을 ’비호감’에서 ’덜 비호감’으로라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절반만 얻으면 당선되는 후보와 달리, 국민 절반을 ‘갈라치기’로 내쳐도 상관없다는, 그런 대통령은 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선 자주 봐야 한다. 윤 당선자에게 기자회견에 자주 나서라는 주문을 하려니,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그러나 이제 윤석열은 ‘정권교체’만을 외치며 토론도 피했던 야당 후보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이다. 이젠 대한민국에서도 대통령 기자회견이 일상다반사가 되길 바란다. 그럴만한 국격과 위상을 이미 갖추지 않았는가. 윤 당선자는 지난달 7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언론에도 자주 모습을 보일 생각이다. 1주일에 한 번은 기자간담회를 해야지 않겠나”라고 했다. 1주일에 한 번은 됐고,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하길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5년간 기자회견은 국민과의 대화(2회)를 포함해 사실상 10번이 전부였다. ‘사전 각본’을 없애 대통령 기자회견을 진일보시켰으나, 더 자주 회견장에 서지 않은 것은 많이 아쉽다.
지난 1월 취임 1주년을 맞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이 가장 적었다고 비판받았다. 그런데 횟수가 1년에 9번이다. 미 대통령 첫해 기자회견 횟수는 도널드 트럼프 22회, 버락 오바마 27회, 조지 부시 19회, 빌 클린턴 38회 등 월 2회가량이다. 바이든은 언론 인터뷰도 적다고 지적받았는데, 첫해 22회다. 트럼프(92회), 오바마(156회), 부시(49회), 클린턴(54회)에 비해 적다는 것이다. 이명박 이후 대통령 국내 언론 인터뷰는 사라지다시피 했다. 윤 당선자에게 월 2회 언론 인터뷰를 기대도, 요구도 않는다. 대신 기자회견 형태로 더 자주 국민 앞에 겸손히 나서주길 바란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마지못해 하는 의무방어전이 아니라, ‘절반의 국민’ 마음을 조금이나 얻을 첫 통로가 될 것이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알 듯 말 듯 한 한마디를 비서관회의에서 툭 던지면, ‘아랫사람들’이 “그 뜻은 이런 것”이라고 풀어 해석하는 일을 또다시 보고 싶진 않다. 대통령 되고도 일곱 글자만 내뱉을 순 없지 않은가. 의원내각제인 영국·일본에선 정식 기자회견 외에도 이슈 때마다 총리가 출퇴근 시 관저 앞에서 기자들 질문을 받고 서서 답한다. 직접 접촉 않으면 ‘실수’는 원천 봉쇄할 수 있다. 그러나 구중궁궐에서 ‘하명’이나 하려고 대통령 된 건 아니지 않은가. 유세장에서 어퍼컷 할 때처럼 자신감을 갖고, 국민 향한 서비스 정신으로 회견장에 들어서길 바란다.
관련해 8일 <미디어오늘> 보도를 보면, 윤 당선자는 지난해 3월 검찰총장직 사퇴 이후 1년간 <중앙일보>와 네 차례, <국민일보> <조선일보> <tv조선>과 각 세 차례, <동아일보> <세계일보> <문화일보> <연합뉴스> <채널A>와 각 두 차례, <경향신문> <매일경제> <서울신문> <한국방송> <SBS> <JTBC> <MBN>과 각 한 번씩 인터뷰했다. <한겨레> <CBS> <MBC> <YTN>과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한다고 인식하는 매체들이다. 우연인가. 또 9일 진행된 개표방송에 윤석열 후보의 최신 프로필 사진을 쓰지 못한 방송사들이 있다. 국민의힘이 일정을 이유로 계속 촬영을 미루다 결국 제작 마감시한을 넘겼기 때문이다. <MBC> <YTN> <JTBC> <연합뉴스TV>다. 우연인가.
이런 갈라치기도 이젠 녹여내는 기자회견이 되길 바란다. 다만 기자회견은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 하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들이 묻고 싶은 것을 대통령으로부터 듣는 자리다. 그래서 봄바람처럼 부드럽진 않다. 2017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은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백악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저한테 곤란한 질문을 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비판적 잣대를 들이댈 의무가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를 여기로 보내준 사람들에게 (우리가) 책임을 다하도록 말이죠. 충분한 정보를 가진 시민들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권력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정보를 시민들이 접할 수 있게 하는 전달자가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팩트와 근거의 기준을 잡아줘야 우리가 그걸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올바른 토론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17년 1월1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 기자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5년 전 오바마 연설을 다시 보며, 기자로서 찔렸다. 과도한 정파적 보도, 혼란스런 불확실 보도, 소홀한 팩트 체크, 혐오 조장 보도 등에 대해 각 언론사가 지향하는 가치를 감안하더라도, 혹 무리한 점은 없었는지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함께 돌아보고 자성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언론도 대통령을 향해 ‘기자회견장에 서는 것이 국민 앞에 서는 것’이라고 좀 더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국민들도 그런 언론의 주장에 힘을 보태줄 것이다.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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