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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부, 나눔이란 무엇인가

등록 2022-03-03 19:15수정 2022-03-08 02:32

[세상읽기] 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기부나 나눔에 대한 어릴 적 생각은 유치했다. 초등학교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을 때 내 저금통뿐만 아니라 형들 저금통까지 다 털어가서 집에서 엄청 혼났던 기억이 있다. 나눔의 선의보다는 인정받고자 하는 허영심이 작용했다.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졌던 ‘불우이웃돕기’는 선한 영향만을 주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리라.

중·고등학교 때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내가 어른이 되면 백만장자가 되어서 백만원을 은행에 집어넣고, 돈이 필요한 사람은 꺼내 가고 돈이 남는 사람은 집어넣고 하면 가난한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기부의 누적적 선순환을 통한 아름다운 세상의 완성이라. 사람의 마음과 돈의 가치에 대한 무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대학 시절 급하게 돈이 필요한 경우가 생겨 지인들의 명단을 작성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했다. 점심 한끼 사주고 매우 불쾌했다고 다른 친구들에게 말한 친구도 있었고, 묵묵히 직장 월급을 가불받아 건네준 친구도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사람들을 대상화했던 내 자신이 보였고 한없이 부끄러웠다.

사법시험을 같이 준비하던 공부모임에서 이런저런 규칙을 정해 위반 시 돈을 모았다. 몇푼 되지는 않았지만 소말리아 난민들에게 기부하자는 제안에서부터 ‘유전무죄 무전유죄’ 탈주범들 가족들을 돕자는 제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소말리아 난민들에 대한 구호품 상당 부분이 중간에 사라진다는 기사가 언급되기도 했다. 논쟁 끝에 손쉽게 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그래도 일부는 필요한 사람한테 간다는 점 등을 이유로 난민들 기부로 결정했다. 그때의 진지함을 잊을 수 없다.

사법연수원 1년이 끝날 무렵, 주변에 공익변호사단체 설립의 꿈을 알리고 호기롭게 개인후원자들의 소액기부 후원으로 유지되는 조직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여러분의 100원짜리 동전 하나는 소장을 쓸 수 있는 볼펜이 됩니다. 여러분의 1000원짜리 지폐 하나는 소장을 내러 갈 수 있는 지하철표가 됩니다….’ 상투적인 문구의 호소문으로 모금을 시작했다. 그 직후 공익변호사단체인 ‘공감’이 생겼다는 소식을 알게 됐고, 공감행을 결정하고 곧바로 개인적인 모금은 접었다. 돌이켜 보면 무모한 모금의 용기가 없었다면 공감의 소식도 뒤늦게 접해 문 두드릴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

비영리 공익변호사단체에서 일하면서 처음에는 하는 일이 공익인데 돈으로 뭘 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뭐 그런 원칙이 다 있나 싶어 기부를 시작했다. 정기 기부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비록 소액이지만 매년 한두 단체씩 기부를 새로 시작하거나 증액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어떻게 보면 큰돈이고 순간순간 결정하는 것 같지만 주위 사람들과 꾸준히 선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원래부터 내 돈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는 막연한 생각. 어렴풋이 생각나는 책의 장면들이 있다. 어린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겨울에 엄마와 모자가게를 들러 모자를 사고 나오다가 추위에 떨고 있는 이에게 모자를 씌워준다. 신혼여행을 떠난 카를 마르크스가 신혼여행지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숙소에 여행자금을 펼쳐놓고 걸어서 집에 돌아온다. 잘못된 기억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이를 접했을 때의 느낌은 시혜를 베푼다는 것보다는 당연히 나눌 것을 나눈다는 것이었다.

수년간 기부와 모금을 하며 내린 결론 중의 하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의 소중함과 돈의 소중함을 동시에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이 수단이 되어서도 돈이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 돈을 매개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형성 속에서 돈이 얘기되는 것이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 삶의 변화 가능성이 싹트는 사람들이 보인다.

코로나19 시대, 중소기업·자영업자들의 고충에 관한 논의는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데 다른 의미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시민사회인권단체 혹은 공익인권법단체들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관련 생태계에 구조적인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통 큰 기부라면 더더욱 좋겠지만 적어도 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는, 조직 운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한 풀뿌리 기부와 나눔들이 이어지면 좋겠다. 계속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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