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지난 수십년간 전 지구를 잡아삼킬 규모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도 아직 살아 있다. 모든 전쟁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냉전의 분위기도 차츰 흐려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 있는 행성과학자 동료들의 안위를 걱정한다.
유럽우주국(ESA)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발사한 화성탐사선 ‘엑소마스’와 탐사차 ‘로절린드 프랭클린’. 유럽우주국 제공
심채경 | 천문학자
2010년 영국의 한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던 피터 배커스는 ‘나에게 여자친구가 없는 이유’라는 짧은 논문을 발표했다. 자신이 연인을 만나는 데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영국의 인구 수와 증감률, 성별비를 감안하고, 적정 연령대 등 본인의 취향과 자신의 기대여명까지 고려하자 런던 시민의 0.0014%가 1차적인 범위 안에 들어왔다. 제법 가능성 있어 보이는 숫자였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다른 연인이 없으면서 동시에 배커스에게 호감을 가질 가능성 등의 추가적인 조건을 감안하면 확률은 28만5000분의 1로 뚝 떨어졌다. 그는 그래도 여자친구를 만날 확률이 외계 문명과 교신할 확률보다는 100배 높다는 말로 계산을 마무리했다.
배커스의 계산은 드레이크 방정식을 활용한 것이다. 1961년 미국의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 박사는 우리 은하 내의 외계 문명과 신호를 주고받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는 공식을 제안했다. 우리 은하 속 별의 수, 별이 행성을 가질 확률, 그 행성이 생명체가 존재할 만한 환경에 있으며 실제로 생명체가 발생할 확률, 그 생명체가 높은 지능을 갖고 외계에 신호를 보낼 만큼 발전할 확률 등을 고려하는 방정식이었다.
그가 제시한 마지막 고려 요소는 그러한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상태가 유지되는 기간이다. 45억년 이상의 지구 역사 가운데 외계에 전파 신호를 보낼 수 있었던 기간은 최근 수십년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오래 외계와의 교신 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2차 대전 후 냉전 시대에 우리 문명의 지속 시간은 중요한 이슈였다. 과학기술과 함께 대량살상무기도 발전했고, 이를 오남용할 경우 지구 문명 대부분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았다. 우리가 가진 문명 샘플은 온 우주를 통틀어 단 하나, 우리 문명뿐이다. 우리가 오래 존속해야 외계인과의 교신 확률 계산 결과도 높아진다. 우주에 빨리 자멸하는 문명만이 가득하다면 우리는 결코 어떤 외계인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지난 수십년간 전 지구를 잡아삼킬 규모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도 아직 살아 있다. 모든 전쟁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냉전의 분위기도 차츰 흐려지는 듯했다. 드레이크 방정식은 인류 평화를 위한 엄중한 경고보다는 그래도 외계인 만날 확률보다는 연인을 찾을 확률이 높다는 농담에 꽤나 잘 어울렸다. 그러나 이제 나는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 있는 행성과학자 동료들의 안위를 걱정한다. 그리고 지금의 전쟁이 더 큰 전쟁을 촉발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한다. 드레이크 방정식의 엄중한 경고가 다시금 살아나는 듯하다.
지상에서 정치적 대립이 생기더라도 우주에서만큼은 같은 지구인으로서 협력하는 것이 우주 탐사의 미덕이었지만 전쟁을 저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재가 시작되면서 우주 탐사를 위한 국제 협력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예를 들어 올해 화성으로 떠나기로 했던 유럽우주국(ESA)의 엑소마스(ExoMars) 2단계의 변화가 예상된다. 지상에서의 발사와 화성에서의 착륙 시스템을 러시아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라면 연기가 불가피하다. 러시아가 맡았던 부분을 유럽우주국이 대체하려면 다시 장기간의 개발 과정이 필요하고, 그러면 2단계를 위해 수년 전에 미리 화성 궤도에 보내놓은 1단계 통신 중계 장치의 수명도 걱정해야 한다. 그런 어려움을 감수하는 편이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는 쪽과 협력하는 것보다 나을 것인가? 명쾌한 답을 구하기는 어렵다.
여러 국가가 오랫동안 함께해왔던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운영도 종전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인류의 우주 진출과 평화적 협력의 상징이었던 국제우주정거장에도 전쟁의 영향이 미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우주 조약을 통해 달을 포함한 지구 밖 천체를 평화적 목적으로만 이용하기로 한 바 있다. 우주 속 지구가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의 문명은 더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