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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픈 흔적 평생 남겠지만…” 그래도 김보름의 상처는 잘 아물고 있다

등록 2022-03-02 09:50수정 2022-03-02 10:00

박찬수의 직선 ㅣ스피드스케이팅 김보름 선수

평창올림픽 뒤 그만둘까 생각했지만
스케이트 못 탄다는 걸 견딜 수 없었다
처음엔 빙판 보는 것도 너무 힘들어

평창 은메달 땄지만 웃는 사진 한장 없어
베이징에선 시상대 서서 맘껏 웃고 싶었다
좀더 나은 상황에서 준비 못한 점 아쉬워

이번 올림픽 마지막일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이 너무 좋아 다시 시작하고 싶어
스케이트 타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
나중에 은퇴할 때 꼽기 위해 남겨둘래요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김보름 선수가 24일 오전 경기도 별내의 한 카페에서 지난 4년간의 심경과 앞으로의 포부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김보름 선수가 24일 오전 경기도 별내의 한 카페에서 지난 4년간의 심경과 앞으로의 포부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 선수가 뒤쳐진 채 두 선수만 빠르게 결승선을 통과하자 ’왕따 주행’ 논란이 일었다. 해프닝 같던 사안은 김보름 선수가 피식 웃는 듯한 표정을 짓고 방송사 중계진이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고 말하면서 엄청난 국민적 비난을 받는 사건으로 떠올랐다. 김보름·박지우 두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엔 순식간에 60만명 이상이 동참했다. 그 직후 메스스타트 종목에서 은메달을 딴 김보름은 눈물을 흘리며 빙판 위에서 큰절을 했지만, 들끓는 비난 여론을 잠재울 순 없었다. 4년 뒤 상황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베이징 올림픽 기간인 2월16일 김보름이 노선영 선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1심에서 일부 승소하자 여론은 180도 바뀌었다. 메스스타트에서 5위를 한 뒤 김 선수는 취재진에게 “메달 땄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여론’이란 이름의 대중 정서가 한 사람을 어떻게 수렁으로 밀어넣는지, 또 얼마나 손쉽게 바뀔 수 있는지 보여줬다. 비슷한 여론몰이는 지금도 계속된다. 우리는 운동선수나 연예인, 정치인, 심지어 일반인까지 한두개의 파편화된 모습을 근거로 야수처럼 공격하고 비난하고 벼랑 끝까지 모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런 시대에 포기하거나 숨지 않고 끝까지 스케이트를 타서 부활한 김보름 선수를 보는 건 놀라운 일이다. 지난 24일 오전 태릉선수촌이 가까운 경기 별내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베이징에서 돌아온 뒤 쉬지도 못하고 다음날(25일) 시작하는 전국동계체전을 위해 김보름 선수는 아침 일찍부터 운동을 하고 카페에 들어섰다.

― 평창의 억울함이 풀리는 데 꼬박 4년이 걸렸습니다. 노선영 선수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시작한 건 2020년 11월이니까, 평창올림픽이 끝나고도 2년이 훨씬 지난 시점입니다. 왜 이렇게 늦게 소송할 결심을 하게된 겁니까?

“조금, 약간 시간이 지나면 그래도 제가 좀 괜찮아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늦었지만 이제라도 한번 소송을 해야겠다, 너무 괴로웠던 시간들이어서, 그래서 그때(2020년 11월) 시작하게 됐어요.”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할 때 지금과 같은 극적인 여론의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를 좀 했습니까? 기자회견에서 ‘아무도 나를 응원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다’고 말했는데, 만약 여론이 여전히 냉담했다면 어떻게 하려고 했습니까?

“사실 그런 기대를 했다기보다는 그냥 ‘올림픽에 집중해야겠다’라고 일단은 생각했어요. 다행히 그 시기에 법원 판결이 나오게 되면서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주셨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선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여론이 계속 냉담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거는 다 했으니까 베이징올림픽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좀 했습니다.”

― 이번 올림픽이 선수로서 참가하는 마지막일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서 베이징에 간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제는 좀 내려놓자, 뭐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베이징이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까? 조금 더 선수로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까?

“그렇죠. 아무래도 일단 좀 힘이 나니까요.”

―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보니까, 평창 올림픽 때는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거 같습니다. ‘죽기살기가 아니라 죽어보자고 마음 먹고 준비를 했다’고 썼는데, 그에 비하면 지난 4년의 시간은 너무 힘들었으니까 베이징올림픽 준비는 평창 때에 비해선 조금 아쉬웠다는 생각을 하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준비하는 4년이라는 시간과 과정이, 평창 올림픽 이후에 4년이라는 그 과정의 시간이 힘들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준비라든가 그런 부분이 좀 아쉽기는 하죠. 코로나로 인해서 국제대회 참가도 거의 하지 못했고요. 유럽 선수들은 코로나 시기에도 유럽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계속 참가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는데 저는 지난해 말에 단 한차례 월드컵에 나갔거든요.”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2018년 평창 올림픽이 끝나고 몇개월 뒤 그 사건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 특별감사가 있었고, 거기서 이미 ‘왕따 주행은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김보름 선수는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이 됐고요. 그런데 대중의 인식이 완전히 바뀐 건 최근 1심 판결이 나오면서입니다. 오래전에 진실이 드러났는데도 사람들은 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요? 있는 그대로 사실을 보지 않는 세상이 좀 야속하지는 않았습니까?

“평창올림픽이 끝나고서 이제 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슈들이 있었고, 또 저에 대한 문화체육부 감사 결과가 나왔을 때는 시간이 좀 지난 상태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도 적었을 때고, 그렇게 제 이슈가 다른 이슈에 묻혔던 거 같아요. 그래도 감사 결과가 제대로 나왔기 때문에, 일단 결과가 중요한 것이니까 뭐 아쉽다는 생각보다는 다행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습니다.”

― 그때 좀 아쉽기는 하지만 언제가는 많은 사람이 진실을 알아줄 거라는 믿음은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거짓 속에 진실이 묻혀 있었던 것이니까, 또 제가 모든 사실을 다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앞으로 있을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언젠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줄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최근에 온라인에서 김보름 선수 머리숱이 많이 빠졌다는 기사와 사진을 봤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까? 그건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건가요?

“저도 그 기사와 사진을 봤는데, 그게 좀 빛도 그렇고 사진을 찍은 각도 때문에 그렇게 나온 것이지 특별히 걱정할 만한 상황은 아닙니다. 심하게 걱정할 정도로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웃음)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평창 때는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가 트레이드마크였는데, 그 뒤로는 염색한 모습을 보지 못한 거 같습니다. 그때 노란색으로 염색한 건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겁니까?

“제가 평창올림픽 전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염색을 했었는데, 그걸 보고 기자 분들이 ‘금메달 따려고 금색으로 염색을 했다’고 써주셨어요. 그래서 평창에서도 금메달을 꼭 따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염색을 했던 겁니다.”

김보름 선수는 1심 재판결과가 나온 2월16일, 베이징에서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올렸다.

“모두에겐 지나간 일이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 시간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의 그 아픈 감정은 세상 어떤 단어로도 표현이 안될 만큼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공황장애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경기 트라우마까지 생겨 아직도 시합 전에 약을 먹지 않으면 경기를 할 수가 없다.”

― 그런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다시 빙판 위에 선 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어떻게 그런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겁니까?

“사실은 저도 너무너무 포기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스케이트가 좋았던 것 같아요. 그게 저한테는 가장 컸고, 그리고 제가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평창올림픽 끝나고 한 6~7개월 정도 운동을 못 했거든요. 그때 스케이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 이제는 그만둬야 하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정말 그만둘까, 그런데 그런 상황이 되니까 앞으로 스케이트를 타지 못한다는 생각이 더 괴롭고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 거 같아요. 사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스케이트장 가는 것조차도 너무 힘들었고…. 제가 반년 넘게 운동을 쉬었기 때문에 일단은 스케이트장부터 한번 가보자, 그렇게 시작을 했어요. 처음에는 정말 스케이트장에 가서 빙판만 쳐다보다가 돌아왔어요, 그러고 나서 스케이트를 신고 서보기도 하고, 그렇게 한발짝 한발짝 시작을 했던 거 같아요.”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스케이트는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타게된 겁니까? 스케이트를 타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대구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 현장 학습으로 스케이트장에 놀러간 적이 있어요. 그때 처음으로 타봤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집에 와서 엄마한테 스케이트 배워보고 싶다고 얘기를 했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또래들보다는 몇년 정도 늦게 시작을 한 거죠.”

― 스케이트를 타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입니까?

“기뻤던 순간은…, 글쎄요, 사실 지금도 제 스케이트 인생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가장 기뻤던 순간은 제가 정말 은퇴를 하게될 때 그때 꼽을래요.”

― 김보름 선수의 정신력이 강하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멘탈이 강하다고 스스로도 생각합니까?

“일단 제가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을 좀 많이 해요. 스스로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가 스케이트 타기 전에는 태권도를 했거든요. 태권도 선수를 하려고 한 건 아니고, 어릴 때 태권도 많이 배우잖아요, 저도 취미로 배운 건데, 너무 재밌고 좋아서 학교 끝나면 태권도장에서 밤 10시까지 혼자 연습하고 그랬어요. 온전히 제가 하고 싶고 좋았기 때문에, 그리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그런 건데,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게 좀 있었던 거 같아요.”

― 4년 전에 김보름 선수를 비난했던 여론이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혹시 이런 따뜻한 여론이 언제 다시 바뀔지 모른다는 걱정이나 두려움은 없습니까?

“그런 거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지난 4년 동안의 시간이 너무 아팠기 때문에 지금은 그냥 좋은 것만 생각하고 싶어요.”

― 누가 가장 고마웠습니까? 어머니입니까?

“가장 힘들 때 엄마가 이것저것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셔서 제일 힘이 많이 났죠. 엄마가 그냥 한마디를 해줘도 위로가 되니까. 나를 가장 격려해주고 일으켰던 사람이 엄마니까, 엄마와 가족을 꼽을래요.”

― 베이징에서 돌아와서 어머니와 만나선 어떤 얘기를 했습니까?

“전국체전 출전 때문에 아직 (대구에 계신)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어요. 짧게 전화 통화만 했습니다. 그냥 고생했다, 고생했다는 말만 하셨어요.”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2018년 메스스타트 종목에서 은메달을 따고서도 울면서 빙상에서 큰절을 하는 모습입니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에 그걸 즐기지 못하고 오히려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심정이 어땠습니까?

“그때는 저도 정말 운동을 하면서, 올림픽 메달을 꿈꾸면서, 정말 인생을 걸고 운동을 했고 그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는데, 사실 웃지 못했다는 게 저한테도 너무 아쉬운 부분이에요. 요즘도 가끔 사진첩을 보면 그때 웃고 있는 사진이 하나도 없어서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선 메달을 따서 시상대에서 맘껏 웃고 싶었는데…, 그러지를 못해서 정말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 그때 팀추월 경기를 함께 했던 박지우 선수 역시 상처가 컸을 텐데, 베이징올림픽에 같이 참가했죠? 이번에 둘이서 어떤 얘기를 했습니까?

“일단은 올림픽이 가장 중요하고 시합이 중요하니까 그냥 경기에 집중하려고 서로 노력했고 경기 얘기만 했어요. 지나간 얘기는 잘 안 합니다.”

― 평창올림픽 이전에 김보름 선수의 꿈 또는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 일 때문에 꿈이나 목표가 바뀌었습니까?

“평창올림픽 전에는 올림픽 금메달 따는 게 제 꿈이었죠. 그때 메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땄으니까,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당연히 이번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제 목표가 됐겠죠. 운동선수로서 스케이트를 평생 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흔히 전성기라고 하죠, 그런 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로선 그게 평창 때였던 거고, 그때 금메달을 따지 못했어도 4년 동안 조금은 더 좋은 환경과 상황에서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었을 거 같아요. 그런 게 아쉽죠.”

― 지난 4년은 그랬지만 이제는 좋은 환경과 분위기가 만들어진 거니까, 4년 뒤 밀라노 올림픽에 다시 나가서 메달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까?

“지금은 정확하게 말씀드릴 순 없고요, 제가 4년 전엔 더이상 스케이트를 못 타겠다, 그만둬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지금 베이징올림픽에 나갔거든요.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5위라는 성적을 냈기 때문에 앞으로 4년 뒤엔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상상이 잘 가지 않습니다.”

― 2014년 소치부터 평창, 베이징까지 세 번의 올림픽에 참가했습니다. 가장 재밌었던 올림픽은 언제입니까?

“이번 베이징올림픽인 것 같아요. 메달을 땄을 때보다 이번에 느꼈던, 어떤 감정들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너무 좋았고 더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많은 분들이 이제 진실을 알아주셨고, 저를 응원해주신 게 가장 크게 남는 거 같아요.”

― 이제 4년 전의 아픈 기억은 다 털어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글쎄요, 그런데 상처는 흔적으로 남긴 남으니까 없어지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잘 아물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 오해가 풀리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아쉬움은 없습니까?

“이제라도 이렇게 밝혀졌으니까 다행이죠. 사실 저는 평생을 가지고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도 괜찮아요, 이제 다시 운동하면 되니까요.”

대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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