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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세노폰이 말하는 좋은 지도자의 조건

등록 2022-03-01 18:05수정 2022-04-13 09:53

고명섭의 카이로스
“엉터리 피리 주자가 훌륭한 피리 주자로 보이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 훌륭한 피리 주자의 겉모습을 흉내 낼 것이네. 훌륭한 피리 주자가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으니 그자도 박수부대를 데리고 다니네. 하지만 연주는 절대로 하면 안 되네. 연주를 하면 사기꾼임이 들통날 테니까.”

옛 그리스 저술가인 크세노폰은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역사상 가장 극적인 모험기 가운데 하나인 <페르시아 원정기> 등의 저작을 남겼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옛 그리스 저술가인 크세노폰은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역사상 가장 극적인 모험기 가운데 하나인 <페르시아 원정기> 등의 저작을 남겼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크세노폰(기원전 428~354)이라는 사람이 있다. 옛 그리스 아테네 출신 저술가다. 그 이름이 역사에 남은 것은 젊은 날 페르시아에서 겪은 군사적 모험을 기록한 <페르시아 원정기> 덕분이지만, 크세노폰은 이 회고록 말고도 많은 저작을 남겼다. 흥미로운 것은 크세노폰이 동시대 철학자 플라톤의 저작과 제목이 똑같은 작품을 여럿 썼다는 사실이다. <향연>(심포시온)이나 <소크라테스의 변명> 같은 글이 그런 경우다.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두 사람은 같은 연배로서 20대에 소크라테스를 스승으로 모셨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크세노폰이나 플라톤이나 서로를 라이벌로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 최소한 크세노폰은 플라톤을 경쟁자로 생각했던 것 같다.

더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공통 소재를 다룰 때 드러나는 태도의 차이다. 플라톤의 <향연> 속 소크라테스가 사뭇 엄숙하고 경건한 것과 달리,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는 한결 소탈하고 쾌활하다. 그래서 크세노폰이 그린 소크라테스가 실제의 소크라테스 모습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크세노폰의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는 춤추고 노래하는가 하면 익살꾼 같은 태도로 자기 자신을 농담거리로 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만찬 참석자들이 어떤 점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지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익살꾼 소크라테스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참석자 가운데 잘생기기로 유명한 젊은 크리토불로스가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하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자네가 나보다 잘생겼다(아름답다)고 뻐기는 건가?”

크리토불로스가 답한다. “물론이죠. 그렇지 않다면 저는 사티로스극에 나오는 실레노스 중에서도 가장 못생긴 실레노스겠죠.”

그리스 신화 속 실레노스는 숲의 정령인데, 배불뚝이 추한 노인으로 그려진다. 소크라테스는 실레노스와 외모가 비슷했고 눈이 튀어나온데다 들창코였다. 그런데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눈과 코가 크리토불로스의 것보다 더 아름답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가 아무 근거도 없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어에서 ‘아름답다’(kalos)는 ‘훌륭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제 기능을 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눈이 툭 튀어나와 있어 크리토불로스보다 더 넓게 더 잘 볼 수 있고, 들창코도 활짝 열려 있어 사방의 냄새를 더 잘 맡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실레노스를 끌어들인다. “물의 여신이 자네보다 나를 더 닮은 실레노스를 낳았다는 것이야말로 자네보다 내가 더 아름답다는 증거일세.” 신이 못생긴 자를 낳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크리토불로스는 만찬장에 있는 젊은 남녀들의 비밀투표로 누가 더 아름다운지 결정하자고 제안한다. 투표용 조약돌을 항아리에서 꺼내보니 젊은이들이 모조리 크리토불로스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나온다. 크리토불로스의 완승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농담기를 지우고 ‘아름다움을 향한 사랑’에 두 종류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나는 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몸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려 하네.”

범속한 사랑은 몸을 지향하지만 천상의 사랑은 혼을 지향한다. 몸의 아름다움은 시들지만 혼의 아름다움은 오래간다. 혼의 아름다움을 사랑할 때 사람은 자기 안의 미덕을 키워 더 나은 사람,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마지막에 소크라테스는 혼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 더 좋은 나라를 만드는 길임을 역설한다.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만찬장 최연장자 리콘이 말한다. “소크라테스 선생, 당신이야말로 진실로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인 것 같소.”

저술가 크세노폰의 관심은 언제나 지도자의 성격과 자질로 향해 있다. 그 점을 <페르시아 원정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저작은 역사상 가장 극적인 모험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페르시아 대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동생이자 소아시아 지역 태수인 키로스가 자신을 죽이려 한 대왕을 몰아내려고 대규모 군사를 모은다. 이때 친구의 권유를 받은 크세노폰이 키로스의 용병대에 합류한다. 그리스 용병 1만여 명은 키로스와 함께 바빌론 근처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들어가 대왕의 군대와 맞붙는다. 하지만 전투 중에 키로스는 전사하고 그리스 용병대는 페르시아 심장부에 버려진 꼴이 되고 만다. 그리스군을 이끌던 장군들마저 대왕 진영에 협상하러 갔다가 붙잡혀 모두 처형당한다.

두려움이 그리스 진영을 휩쓴다. 이때 크세노폰이 나선다. “전쟁에서 승리는 수와 힘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하느냐에 달렸소. 전장에서 목숨을 건지려고만 하는 자는 대개 비참한 죽음을 맞지만 명예롭게 죽으려고 하는 자들은 오히려 살게 되오.” 크세노폰의 ‘사즉생 연설’로 1만 용병대는 힘을 내 지휘부를 새로 뽑고 전열을 재정비한다. 그리스인들은 적군의 쏟아지는 화살과 투석을 막아내고 추위와 폭설과 굶주림을 이겨내며 험준한 산악을 넘어 여덟 달 만에 흑해 연안 그리스 땅에 도착한다.

<페르시아 원정기>는 전쟁을 이끄는 장군들의 성격과 행동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그리스군을 배신하고 페르시아 쪽으로 넘어간 테살리아 출신 장군 메논을 이렇게 기록한다. “메논은 거짓 맹세를 일삼는 자들은 모두 잘 무장한 사람이라 여기고 두려워했으나, 경건하고 진실한 자들은 유약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이용하려 했다. 다른 이들이 자신의 경건함과 진실성과 정의감을 자랑스럽게 여기듯, 메논은 속이고 거짓을 지어내고 친구들을 조롱하는 자신의 능력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메논은 또 제일인자가 되려고 할 때는 이미 제일인자가 돼 있는 자를 모함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크세노폰은 메논의 최후를 이렇게 증언한다. “동료 장군들이 키로스와 함께 대왕을 치러 행군했다는 이유로 처형을 당했을 때, 메논은 똑같은 행동을 했는데도 죽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장군들이 처형된 뒤에 대왕은 메논에게 사형의 벌을 주었고, 메논은 고문을 받으며 1년을 더 살다가 범죄자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런 기술로써 <페르시아 원정기>는 전쟁의 기술을 알려주는 책을 넘어 지도자에게 필요한 윤리적 덕목을 가르치는 책으로 후세에 남았다.

스승을 흠모했던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의 행적과 발언을 기록한 회상기도 썼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듯, 크세노폰도 <소크라테스 회상기>에서 스승의 입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소크라테스는 명성을 얻으려고 허세를 부리는 자들을 엉터리 피리 주자에 비유한다. “엉터리 피리 주자가 훌륭한 피리 주자로 보이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 훌륭한 피리 주자의 겉모습을 흉내 낼 것이네. 훌륭한 피리 주자가 좋은 장비와 많은 수행원을 데리고 다니니 그자도 그렇게 하네. 훌륭한 피리 주자가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으니 그자도 박수부대를 데리고 다니네. 하지만 연주는 절대로 하면 안 되네. 연주를 하면 사기꾼임이 들통날 테니까.”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인다. “훌륭한 장군도 훌륭한 선장도 아닌 사람이 훌륭하게 보이기를 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사람들이 만약 설득에 성공한다면 그보다 더 큰 재앙은 없을 것이네. 아무 지식도 없으면서 선장이나 장군으로 임명된 자는 사람들을 망하게 하고 자신도 치욕과 불명예를 떠안기 때문이네. 남을 설득하여 돈이나 재물을 사취하는 것도 가볍지 않은 기만이지만, 아무 쓸모 없는 자가 국가를 이끌 적임자라고 속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기만일세.” 사익을 공익으로, 무능을 유능으로 포장하는 정치꾼들은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정치판에도 어슬렁거렸다.

소크라테스는 스트라테고스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도 한다. “전쟁 위기 때는 나라 전체의 운명이 스트라테고스의 손에 맡겨지네. 스트라테고스가 실패하면 나라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네. 그러므로 스트라테고스가 되는 법을 소홀히 하면서 스트라테고스로 선출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자가 있다면 벌받아 마땅하네.” 스트라테고스는 오늘날의 국군 통수권자와 같다. 통수권을 잘못 쓸 때 나라가 어떤 위험에 빠지는지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여러 차례 보았다. 사술과 기만으로 스트라테고스 지위에 오르려는 자는 어느 시대에나 있다. 어리석음의 지배를 막으려면 민주 시민이 곧은 눈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내는 수밖에 없다.

michael@hani.co.kr

고명섭 | 책지성팀 선임기자. <니체 극장-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즐거운 지식-책의 바다를 항해하는 187편의 지식 오디세이>, <광기와 천재-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을 냈다. 카이로스는 때, 시기, 기회를 뜻하며 현재를 밝히는 순간의 섬광을 뜻한다. 카이로스의 눈으로 철학·사상·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을 탐사하며 우리 시대와 대화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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