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전 서울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 승강장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장애인 이동권 예산 배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전치형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주간
서울 지하철에서 장애인 이동권 예산
배정과 실행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던 장애인들은 왜 비난을 받았는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지하철에 오르고 내리는 방식의 시위를 하자 같은 지하철을 타고 있던 시민들이 화를 냈다.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면서 직장에 지각했거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생계에 지장이 생긴 경우가 있었을 터이다. 계속된 지하철 시위에 격분한 어떤 시민은 시위를 주도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사무실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장애인들에게 그 어떤 절박한 사정과 요구가 있다고 해도 지하철을 지연시키는 행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이동은 신성한 것이다. 이동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수단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모두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되었다. 이동하는 것, 특히 빠르고 멀리 이동하는 것은 곧 진보를 뜻한다. 이동은 자아실현, 경제성장, 사회발전의 기초이자 결과로 간주된다. 사람과 물자를 끊임없이 이동시키는 것은 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자 임무이고, 우리는 이러한 이동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 반면 사회가 설정한 방식으로 이동하지 않는 사람은 나태하거나 무능력한 것으로 치부된다. 어떤 이유로든 이동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의 걸림돌과 같은 존재가 된다. 출근길 시위 현장이 된 지하철에 타고 있던 시민들에게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타인의 이동을 방해하는 장애인들은 이중의 걸림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 사회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유지해야 한다는 엄중한 명령을 내리고 그것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다. 이동을 늦추거나 막는 것은 모두 죄악이고 어떻게든 제거되어야 한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과 그의 동료들은 석탄의 이동을 막는 것들을 제거하라는 임무를 받았고, 그 일을 하다가 사람이 죽어 나가는 한이 있어도 석탄의 이동은 계속되어야 했다.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던 김군은 지하철을 탄 사람들의 이동을 막는 고장을 처리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선로에 들어가 수리를 하다가 열차에 치이는 위험이 있더라도 스크린도어는 언제나 차질 없이 열려야 하고 지하철의 이동은 계속되어야 했다. 김용균과 구의역 김군은 거대한 이동 시스템에 난 작은 구멍(석탄 컨베이어 점검구와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몸을 들이밀어 시스템을 손보다가 절대 멈추지 않는 시스템에 치였다.
사람이 죽어 나가더라도 계속 움직일 것이 분명한 지하철의 출입문 사이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몸을 들이밀었을 때 그들은 무엇을 기대했으며 무엇을 목격했을까. 화력발전소의 김용균과 지하철역의 김군은 이동 시스템이 멈추지 않고 작동하도록 유지하는 일에 동원되었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자신들이 아예 그 시스템에 편입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지하철로 들어갔다. 빠르게 달리던 지하철이 잠시 느려지자 누가 열차에 올라 있고 누가 열차에 오를 수조차 없는지 드러났다. 시위 진입 경찰이 이들을 휠체어와 함께 들어올려 지하철 밖으로 빼낼 때 장애인들은 마치 발전소 안 석탄 부스러기나 지하철 승강장의 고장 난 스크린도어처럼 신속하게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당했다.
하나의 거대한 이동 시스템이 된 이 사회는 실은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누군가를 배제하면서 돌아가고 있다. 신성한 이동의 명령을 집행하기 위해 힘없는 젊은이들이 투입되고, 이동의 명령을 따를 수 없는 장애인은 시스템에 발을 들여놓는 것부터 거부당하고 심지어 시스템의 훼방꾼이라고 비난받는다. 이동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사람들과 이동의 장애물이 된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처지다. 어쩌다 시스템의 이동이 지체되면 비난의 눈초리는 지금껏 시스템을 지켜왔거나 그 밖으로 밀려나 있던 이들에게 향한다. 왜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시스템이 지금처럼 희생과 배제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는지 따지는 법은 좀처럼 없다. 다들 각자 움직이느라 바쁘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화나시겠지만, 장애인들에게 욕 100번 하시면 한번만이라도 정부와 대통령 후보에게도 해달라”는 박경석 전장연 대표의 말은 장애인 시위로 인한 지하철 지연 사태에서 우리의 눈초리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지적하고 있다. 이동하라는 명령, 이동을 유지하라는 명령만이 가득한 가운데 함께 이동할 권리도 생각해보자는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