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21일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MBC)에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첫 티브이(TV) 토론회에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기고] 나임윤경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 21일 대선 후보 티브이(TV) 토론회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이재명 후보가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발언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없냐” 물었다. 거북한 질문을 던진 상대에게 거짓말 말라, 제대로 알고 질문하라, 내가 언제 그랬냐 등의 발뺌으로 일관해오던 그답게, 그러나 이번엔 더욱 노골적으로 “답변할 필요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큰 기대는 없었기에 그의 회피전략이 놀랍지는 않았으나 대신 그가 ‘구조적 성차별’의 의미는 알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뜻을 이해하고 있었다면, 전세계 어느 사회에나 있는 구조적 성차별이 한국에는 없다고 거침없이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56개국 여성의 경제 참여와 정치 권한을 측정한 세계 성 격차 지수(Gender Gap Index)에서 한국은 2021년 현재 102위에 머무를 만큼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심각한 사회인데 말이다.
성차별은 물론 범죄의 대부분이 구조적 모순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범죄 발생을 방치한 문제적 구조를 바꿔내지 않으면 유사 범행이 지속적으로 재발한다는 의미이다. 만일 성차별이 윤 후보의 말처럼 구조가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성차별을 저지른 개인만 단죄하면 성차별은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엔(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 등 소수의 가해자에게 중형을 내리고 일정 기간 사회에서 격리한다면 한국 사회는 디지털 성범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몇달 뒤면 출소할 권력형 성범죄자 안희정 한 사람이 감옥에 보내졌다 해서 ‘젊은 여성’만이 비서가 되어 차 대접을 하고, 권력자들의 ‘심기’를 보살피며 감정노동을 감수하는 정치권의 상습적 성차별이 사라지고 있는가? 성차별이 구조적 모순이 아니라 개인적 문제라면 왜 여성만이 엠(M)자형 생애주기를 가지며, 왜 한국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70%에도 못 미치며, 왜 여성이 성폭력 피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가해자 대부분은 남성인지 어떻게 설명 가능한가. ‘개인’ 여성 대부분이 출산 후 임금노동 중단을 선택했고, ‘개인’ 여성들이 남성의 70% 정도로만 ‘적당히’ 일하기로 작정했으며, ‘개인’ 여성들이 ‘꽃뱀’이 되기로 맘먹고 성범죄를 유발하며, 또한 ‘개인’ 남성들이 인터넷 ‘괴물’이 되길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인가. 백번 양보해 그렇다 치더라도 다수의 ‘개인’ 여성과 다수의 ‘개인’ 남성이 특정한 ‘선택지’에 몰려 있다면 그건 어떤 정교한 구조가 체계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와 함께 더욱 중요하게 지적해야 할 것은, 시민의 힘으로 제도적 민주주의와 정권교체까지 이룬 사회의 유력 대선 후보가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한다는 그 자체가 한국 사회의 성차별에 관한 매우 심각한 구조적 문제라는 점이다.
성차별이 개인적인 일이라며 개입하지 않으려는 권력자가 있고, 그 권력자의 눈에 들기 위해 피해자를 음해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꿔 거짓 정보를 유포하며 2차 가해를 일삼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의 비행을 눙치고 넘어가 주는 조직적 관행과 솜방망이 법이 한국 사회에 팽배하다. 이들이 모여 빈틈없는 성차별 구조가 짜인다. 윤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으로 성차별 정치인의 상징으로 부상했고, 그의 ‘구겨진’ 인식과 무지를 감싸고 지지하는 몇몇 언론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는 여론, 그리고 같은 당 이준석 대표와 하태경 의원 같은 측근 정치인들은 한국 사회의 성차별을 강화하는 ‘나쁜 구조’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이렇듯 그 나쁜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권력자들이, 언론과 여론이, 그리고 법이 바뀌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의 성차별은 필연적으로 지속될 것이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국민의 삶을 국민이 책임져야지 왜 정부가 책임집니까?”라는 놀라운 주장이 있었다. 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 넘기려 하면서도 대권만은 손에 쥐려는 제1야당의 정체성이 짙게 묻어난 발언이다. 그러나 언급했듯 성차별은 구조적 문제이며, 이를 부정한 윤석열 후보는 본인이 그 잘못된 구조임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도 거침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