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임인택
스페셜콘텐츠부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검찰 권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사법 분야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세계적 석유회사인 셸(Shell)이 2020년 트위터로 설문조사를 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바꾸겠는가? 소박해 진심 같은 질문에 적잖은 시민들이 재생에너지 사용, 전기차 구매 등 제 각오로 답했지만, 환경운동가들은 뒷목을 잡았다. 셸 혼자 뿜어내는 탄소량이 전세계 배출량의 1~2%에 이른 탓이다.
셸은 지난해 자사의 자동차 오일을 “탄소중립 오일”이라며 내다팔았다.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려면” 써야 할 상품이란 문구를 덧붙였다. 실은 제품 생산·유통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만큼 다른 데다 탄소감축 비용을 지불했단 말인데, 인색하자 치면 오늘 나무 한 그루 심어 내일 그냥 뽑고 베는 일이다. 바라건대 더 병들진 않더라도 지구가 나아질 순 없다.
“기후변화에 맞선 전쟁에서 자연이 필수”라며 숲 재건 사업을 지원한다는 기업 광고는 ‘탄소중립 오일’을 가능케 하는 탄소비용 상쇄의 일환이고, 그 상쇄비용이란 것도 실제 셸이 배출하는 탄소의 10분의 1이 안 된다. 셸은 재활용 플라스틱 벽돌을 활용하기도 한다, 주유소 짓는 데에.
이런 일련의 수작을 우리는 ‘그린워싱’이라 부른다. 기후위기 세대 감성이 무섭긴 한 모양인데 말로 퉁칠 일은 아니다. 네덜란드 법원은 셸의 ‘탄소중립 오일’을 허위광고로 제지했다. 몇달 뒤 다른 판결에선 지구온난화 책임자로 인권을 침해한다며 탄소배출을 감축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일개 기업 상대로 탄소감축 의무를 구체적으로 판결한 첫 사례다. 이건 셸이 항소한 상태다.
‘세탁’이란 말이 오염된 지는 오래라 세탁은 스스로를 세탁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거짓과 음모의 세계가 주는 환멸 탓인지 최근 윤석열 후보의 솔직함은 도드라진다.
“문재인 정부 초기처럼 전 정권 적폐 청산 수사를 할 건가”란 질문에 거침없이 “당연히 한다”고 말하고, 최측근 검사장을 두고는 “서울중앙지검장을 하면 안 되는 건가”라고 되묻는다. ‘검찰 권력 강화’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민정부 이후 단 한번도 대선 후보에게 들어볼 수 없었던 것이다. 객차 안 건너편 좌석에 다리를 뻗어 올리는 것 또한 솔직해 가능한 일 아닐까. 지지율을 반등시켰다는 “여성가족부 폐지”는 어떤가.
다만 ‘솔직하다’가 바로 ‘진실되다’는 아니다. 한평생 검찰 조직에서 검찰총장까지 하던 자신은 국민이 불러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 하고, 집권시 측근 검사들의 공직인사 가능성에 대해선 “정치경력이 없는 순수한 검사 출신은 같이 정치하기가 좀 어렵지 않겠나” 선을 긋는다(<중앙일보> 인터뷰). 둘 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정치경력 없는 검사의 솔직한 발언인데, 이 솔직과 저 솔직 사이 진실만 납작하고 모호해진다. 본디 ‘솔직’은 거짓없음과 바름으로 화합된 말이다. 그래서 눈치 보며 ‘세탁’할 필요조차 없는, 권력자의 솔직은 말 그대로 권력일 뿐이다.
선거가 바투 임박해온다. 그간의 여론조사가 얼마나 솔직한 결과였는지도 곧 드러날 테지만, 사실 유권자 10명 중 4명은 투표 2주 전까지 지지 후보 결정을 유보해왔다. 2000년대 들어 치른 4차례의 대선 뒤 유권자 의식 조사 결과가 그렇다. 선거 당일~1주 내 후보를 확정했다는 이들도 열에 셋꼴이다. 지지 후보를 바꿨다는 이들은 16.8%. 2030세대의 ‘변심’ 비율이 줄곧 높았으나 19대 대선 때는 4050세대가 도드라졌다. 다수가 최초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다던 이들이다. ‘당일~2주 내 결정’한 이들이 가장 많았던 대선은 17대(48.4%)다. 경제우선·정권교체 프레임 아래, 큰 득표율 차로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눌렀다. 당시 10명 중 4명꼴(38.8%)은 ‘1주 내’, 2.5명꼴은 ‘당일~사흘 새 결정했다’고 답한 대신, 전체 투표율은 역대 최저(63%)를 기록했다. 두 유력 후보에 대한 비호감이 컸다는 얘기다.(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수집해 주로 학술연구용으로 활용해온 데이터를 입수해 분석해봤다.)
역대 최고의 비호감 선거라고들 한다. 말마따나 이상한 배우자와 더 이상한 배우자를 둔 나쁜 후보와 더 나쁜 후보(<한겨레21>, 김소희) 사이에서 우리는 누구든 ‘제대로 뽑는 거다’ 솔직해질 수 있을까. 남은 기간, 좀 더 그러해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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