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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뉴노멀-혁신] 기술부채와 정치부채

등록 2022-02-13 18:23수정 2022-02-14 02:01

[뉴노멀-혁신] 김진화 | 연쇄창업가

스타트업 열풍이 거세다. ‘닷컴 버블’처럼 지나가는 유행일 거라는 회의론도 많았지만 코로나 사태를 경과하며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이제 대기업은 물론 개미들까지 우량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고 아우성이다. 필자에게도 묻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해야 하나요. 대박 날 것 같은 스타트업은 어떻게 찾나요.

대부분 그걸 알면 내가 왜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나 싶은 게으른 질문들이다. 스타트업의 성공 공식, 여러번 창업을 했고 여러 초기 기업에 투자를 이어가는 입장에서도 참 어려운 얘기다. 다만 질문을 바꿔볼 수는 있겠다. 대기업도 많고 공기업이며 금융기관까지 한국 사회는 이미 촘촘하게 땅따먹기 판이 돼 있는데 스타트업이 이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은 좋은 학벌과 화려한 경력의 창업팀이 시장의 공백과 문제를 잘 발견해 ‘초격차’의 신묘한 기술로 골리앗들을 무찌르는 판타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 드림팀이 없지는 않겠지만, 있다 해도 당신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올 리 만무하다. 대개 조건이 비슷하다고 했을 때, 필자가 눈여겨보는 부분은 시간의 대차대조표를 잘 활용해 집요하게 기회를 늘려가는 신공이다.

신속한 의사 결정은 기본이고 서비스를 출시하면서도 스타트업은 껍데기만 만든다. 이른바 ‘가짜 자동화’. 고객이 얼마나 올지도 모르는데 뒷단까지 완벽하게 돌아가는 서비스를 만드는 건 시간 낭비다. 고객들이 보기엔 자동으로 처리되는 듯하지만 실은 ‘노가다’로 때운다. 반응에 따라 기능도 수시로 바꾼다. 설계도 따위는 애당초 없다. 쪽대본으로 일일드라마 찍듯 시청률에 따라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 이런 식으로 압축한 시간은 모든 일이 그렇듯 공짜로 늘어난 게 아니다. 언젠가 처리해야 할 부채다. 그 바닥에선 이걸 ‘기술 부채’라 칭한다. 얼기설기 만들어온 시스템이 균열을 일으키기 전에 싹 뒤엎어야 할지도 모른다.

기술 부채를 쌓으며 고객을 확보하고 시장을 만들어낸 스타트업은 그걸 바탕으로 투자를 유치하고 인력을 확보해 기술 부채로 날아든 청구서를 갚아 나가며 다음 단계로 성장한다. 비단 기술 부채만 쌓이는 건 아니다. 일단 ‘저지르고 용서를 구하는’ 식으로 규제를 피해 시간을 벌기 마련이라, 사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용서를 구하고 규제의 세례를 받는, 운영 부채 상환이라는 고비도 넘어야 한다. 그래도 어쨌든 이 단계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꼭 해야 할 일들에 투여할 시간을 늘리며 나중에 해도 될 일을 부채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미하엘 엔데는 시간을 화폐에 빗대어 삶에 대한 성찰을 일깨웠지만, 스타트업들은 반대로 시간을 부채처럼 다루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부채를 미래로 떠넘기며 시간과 기회를 가불하며 살기 때문이다. 일과 성공에만 온 시간을 투여하며 관계에 소홀했던 이들은 나중에 외로움이라는 청구서를 떠안게 될지도 모른다. 경제 개발과 성장에만 압축적으로 시간을 투여해온 한국 사회는 이제 선진국의 책임이라는 부채 상환을 국제사회로부터 요구받게 될 터이다. 청구서는 어떤 식으로든 날아오기 마련이다.

다음달 치를 대선을 앞두고 곤혹스러운 이들은 그동안 날아든 청구서를 등한시해온 집권세력일 게다. 정권교체 여론이 비등하다. 우리 권력 제도의 특성상 대통령과 핵심그룹은 대개 소수파 내지는 언더독이다. 집권을 위해 정당 안팎에 많은 ‘정치 부채’를 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것을 청산하고도 남을 5년의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다. 많은 자원과 수단을 갖게 된 후에도 여전히 청구서에 독촉장에, 원금 상환은커녕 이자만 불려왔다는 사실이 뼈아프다. 다음 대통령은, 집권 후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절반의 마음을 부채로 받아들이며 정산에 최선을 다하고 그를 통해 더 크게 성장하는 사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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