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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심채경의 랑데부] 하늘을 올려다봐야 할 때

등록 2022-02-10 17:58수정 2022-02-11 02:33

영화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 지구적 기후위기를 혜성 충돌에 비유했다고 한다.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며 딴소리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이며 경종을 울린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모습은 좀 더 작은 규모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심채경 | 천문학자

영화 <돈 룩 업>은 엄청난 속도로 지구로 돌진하고 있는 혜성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반년만 지나면 지구에 충돌할 상황이지만 그 급박함을 알아주는 이는 별로 없다. 돈이든 권력이든 영향력이든, 손에 쥔 것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이 곧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손안에서 빠져나가게 된다는 것을, 모래알을 쥐고 있던 그 손조차도 곧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저 눈앞의 현실을 활용해 평소 자신이 하던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애쓸 뿐이다.

영화 스토리 전개가 빨라서 지루할 틈이 없기도 하지만, 상영 시간 내내 영화 속 음악에 사로잡혔다. 특히 아리아나 그란데가 커다란 공연장 무대에 서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불러주는 넘버 ‘저스트 룩 업’은 과연 압도적이었다. 살짝 우스꽝스러운 대목이 있는 가사를 진지하게 부르는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역시 과학자들의 말 좀 들으라고 일침을 가하는 부분에서 속 시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과학자들의 말을 꼭 잘 들어야만 할까? 영화 속 아리아나 그란데가 분한 라일리는 ‘자격이 있는’ 과학자들의 말을 들으라고 노래했다. 자격이 있는 과학자란, 어떤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전문가란 누구일까?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자가 여럿 있다면, 그 목소리들이 상충하는 주장을 한다면, 그중 어느 쪽에 무게를 실어 귀 기울여야 할까? 어떤 과학자가 자격이 있고 없는지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을 훌륭한 과학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들은 과학자임과 동시에 대중매체에 친화적이기 때문에 자주 등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 속의 두 과학자를 보자. 혜성을 발견한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와 그의 지도교수 랜들 민디 박사는 함께 티브이(TV)에 출연한 뒤 전혀 다른 반응을 얻는다. 절망적인 사건을 절망적으로 경고한 디비아스키는 언론에 외면당하고 에스엔에스(SNS)상에서 널리 조롱받는 운명에 처하는 반면, 정해진 방송 시나리오의 틀을 지키면서 그 안에서 우연히 나름의 매력을 선보인 민디 박사는 다음 방송 출연 기회를, 그리고 명성을 얻는다.

유명인사가 된 민디 박사는 혜성 충돌 문제만을 걱정하던 처음과는 조금 달라진다. 댓글을 챙겨 보며 일희일비하고, 처음엔 불편해했던 기업가의 편에 서서 대중을 안심시키는 티브이 광고에 등장한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대신, 엄청난 부를 얻을 수도 있다는 기업가의 말에 그의 회사가 모든 준비를 마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민디 박사. 그런 그가 비단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가공의 인물만은 아니리라는 묘한 현실감이 든다.

누가 하는 말이 믿을 만한지 잘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전문가만큼은 아니라도 나름의 공을 들여 한번 알아본 결과 이 사람은 믿을 만하다고 마음속으로 점찍어 둘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전문가는 시기에 따라 신뢰할 수 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영화 속 민디 박사는 옳고 그름의 잣대 위에서 오락가락하는 인물이다. 같은 과학적 사실을 두고도 그에 대한 의견이나 입장은 바뀔 수 있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고, 누군가 해결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영화 속 라일리는 이렇게 노래한다. 그냥 위를 올려다보라고.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부정할 수 없는 문제를 직시하라고. 계속해서 신경을 쓰고 판단해야 한다니, 사실 그건 꽤나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의탁하고 싶어진다. 내가 믿는 사람이 옳다고 하면 옳다고 생각하고, 그가 행동하라고 하면 따르면 되니 그건 얼마나 편한 일인가. 어른들은 다 옳은 줄로만 알았던 어린 시절처럼 말이다. 그러나 실상은, 어른이라고 해서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영화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 지구적 기후위기를 혜성 충돌에 비유했다고 한다.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며 딴소리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이며 경종을 울린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모습은 좀 더 작은 규모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누군가는 자세히 알아보려고 하고 누군가는 거기 신경 쓰지 말고 다른 것을 보라고 한다. 질적으로 서로 다른 문제를 매체를 거치며 마사지해 비슷한 문제인 양한다. 더 많은 이가 부화뇌동하기를 바라며 우렛소리를 내는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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