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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스라엘의 부메랑 ‘페가수스’

등록 2022-02-10 17:48수정 2022-02-11 02:32

[코즈모폴리턴] 신기섭 |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이스라엘이 국제 관계에서 이익을 챙기는 도구로 활용하던 해킹 소프트웨어 ‘페가수스’가 이스라엘 국내에서도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현지 경제 매체 <칼칼리스트>는 지난 7일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의 주변 인물을 대상으로 경찰이 이 해킹 도구를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보도 직후 이스라엘 정부는 진상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네타냐후는 여러 나라에서 민간인 사찰에 이용되면서 논란을 빚고 있는 페가수스를 외교 관계에 적극 활용한 인물이다. 자신이 만든 무기에 역습을 당한 꼴이다. 이스라엘 일간 <하아레츠>는 “네타냐후 쪽은 경찰이 불법적인 ‘마녀사냥’을 벌였다고 공세를 펴지만, ‘페가수스 외교’의 개척자가 바로 네타냐후”라고 지적했다.

페가수스는 벤처기업가들과 군 정보기관 출신이 설립한 보안기업 ‘엔에스오 그룹’이 2011년 개발해 외국 정부에 조용히 판매해온 해킹 도구다. 이 해킹 도구는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의 보안 기능을 뚫어 스마트폰 이용자의 정보를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스마트폰 소유자가 볼 수 없는 비밀 문자메시지를 전송하는 것만으로 해킹이 가능하다. 사용자가 조심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해킹 도구는 군사 무기로 분류되어 이스라엘 국방부의 승인을 받아야만 수출할 수 있다. 판매 대상도 정부기관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쪽은 이 도구가 테러나 마약 밀매 같은 중범죄 수사에만 쓰인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7월 프랑스 파리의 비영리 언론 조직 ‘금지된 이야기들’(포비든 스토리스)이 전세계 17개 언론사와 공동으로 페가수스 해킹 실태를 추적한 결과,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2016년 이후 각국 정부기관이 표적으로 삼은 것으로 추정되는 전화번호 5만개를 확인한 결과, 이 중 1000여개는 기자, 활동가, 정치인의 전화번호였다. 정치인 중에는 국가 정상급 인사도 14명이나 있었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이라크의 바르함 살리흐 대통령,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이 명단에 있었다. 파키스탄의 임란 칸 등 3명의 현직 총리도 해킹 대상으로 추정됐다.

페가수스가 단순한 군사 무기라기보다 고도의 정치 도구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수출 전략에서도 드러난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이스라엘이 페가수스를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에 제공하면서 2020년 두 나라와 수교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양쪽의 수교 논의 과정에서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이 페가수스 사용 계약을 연장해주지 않으면 수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페가수스가 미국 내 전화번호를 해킹할 수 없도록 설계됐다는 점도 이 해킹 도구의 정치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미국에 밉보이지 않으려는 이스라엘의 고려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는 엔에스오 그룹이 미국 내 이동전화를 해킹할 수 있는 별도의 프로그램인 ‘팬텀’을 만들어 지난해 여름 미 연방수사국(FBI)을 대상으로 시연했다고 폭로했다. 연방수사국은 법무부와 논의 끝에 팬텀이나 페가수스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미 정부는 또 지난해 11월 엔에스오 그룹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 결정에 격분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하아레츠>는 세계가 페가수스 논란을 벌이는 와중에도 이스라엘 국내에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나, 네타냐후 측근 해킹 보도 뒤에야 주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페가수스는 ‘내가 휘두르는 무기가 언젠가는 내 목을 겨눌 수 있다’고 경고한다.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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