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이원재 | LAB2050 대표
‘기본소득’이라는 아이가 마을에 도착했어요. 가장 가난한 사람부터 최고 부자까지, 100명이 사는 마을이었지요. 아이는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평생 매달 100냥씩 주겠다고 했어요. 마을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환영했지요.
농사일거리가 없어지기 시작한 때였어요. 땅 가진 사람과 품삯으로 먹고사는 사람 사이 격차도 커지고 있었지요.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이 아이에 대한 관심을 키웠어요. 인기는 절정에 다다랐고요. 업고 다니며 자기 아이처럼 자랑하는 어른들도 나왔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어떤 어른들이 캐묻기 시작했어요. 돈이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고요. 아이는 설명했어요. 마을 사람들이 나누어 내는 것이라고요. 땅을 더 가진 부자들이 더 내고 가난한 사람들이 덜 내게 된다고요. 돈이 많을 때 더 내고 돈이 없을 때 내지 않게 된다고요. 원래 마을에서 걷던 ‘세금'과 똑같이 거두면 된다고요.
사람들은 셈을 하기 시작했어요. 재산 많은 사람은 더 많이 내고, 가난한 사람은 덜 낸다는 계산이 나왔어요. 다 낼 필요도 없이, 부자 10명만 내도 모두가 조금씩은 받을 수 있다는 계산도 나왔지요. 우선 조금씩 받기 시작하고 나중에 늘려가자는 이야기였지요. 모두가 받지만 내는 돈이 각기 달라서 누가 이익이고 누가 손해인지가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그러고는 바로 화내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가만히 있다가는 손해볼 것이 분명해진, 원래 목소리가 크던 어른들이었답니다.
마을 금고지기들이 가장 먼저 언성을 높였어요. “100냥씩 100명에게 주려면 1만냥이나 필요한데, 돈을 너무 많이 쓴다. 그 돈이 어디 있느냐! 마을 빚을 내란 말이냐?” 하지만 아이는 한 푼도 떼어 쓰지 않아요. 돈 낸 사람들이 바로 다시 받아가거든요. 사람을 가려서 나누어주려면 시간도 걸리고 비용도
들겠지요. 하지만 그냥 나누어주는 데는 돈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요. 그러니 금고에서 돈을 한 푼도 새로 꺼낼 필요가 없어요. 금고지기들은 왜 화를 내지요?
다음에는 구휼을 맡은 관아의 나리들이 아이를 윽박질렀어요.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후하게 줘도 되는데 왜 모두에게 푼돈을 주겠다고 하느냐?” 매달 100냥씩 계속 받으면 평생 10만냥가량이나 된답니다. 푼돈이 아니에요.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도움보다도 훨씬 큰 돈입니다. 아이는 이상한 핑계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 나리들은 평생 일거리를 보장받고, 적지 않은 돈을 품삯으로 받고 있었어요. 많은 나리들은 누가 가난한지 골라내고 도움 신청에 필요한 서류 만들고 회의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낸답니다. 모두에게 그냥 주면 그런 일은 필요 없어질 텐데,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어떤 마을 어른은 물었어요. “사람들에게는 돈보다 일자리가 중요하다! 돈을 주지 말고 일자리를 줘야 하지 않느냐?” 아이는 당황했어요. 일자리가 필요없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거든요. 사람에게는 돈도 필요하고 일도 필요하지요. 하지만 돈이 너무 없어서 억지로 나간 일터에서는, 품삯 제대로 못 받고 두들겨 맞아도 꾹 참고 일해야 해요. 대충대충 해치워버리려는 마음도 자꾸 들지요. 여유가 좀 있어야 더 잘할 수 있고 보람있는 일을 찾아다니며 더 열심히 일할 수도 있고요.
마을 어른들이 너무 큰 소리로 험담하며 투닥거리니, 사람들은 점점 아이와 거리를 두려 하네요. 업고 다니던 어른들도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 아이는 아니네요’라고 말하곤 한답니다. 그사이 최고 부잣집 재산은 점점 커져서, 맨 아래 예순 집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더 많아졌어요. 잘사는 열명의 한 해 벌이를 합하면 맨 아래 예순명이 번 것보다 크고요. 부잣집 아이가 공부도 더 잘하고, 부잣집 어르신이 건강도 더 좋답니다. 불안해진 마을 청년들은 땅 쪼가리라도 사두려고 빚을 내기 시작했는데요. 빚조차도 부잣집 청년이라야 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이대로 가면 마을은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부자들과 먹고살기 위해 없는 일까지 찾아서 하는 가난한 사람들로 쪼개질 거예요.
우리는 아직 아이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어요. 역병이 퍼지고 농사일거리가 줄더라도, 누구나 품삯 걱정 없이 자유롭게 일하는 마을을 만들 수는 없나요?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손잡고 힘을 합치는 마을을 만들 수는 없나요? ‘대한민국’이라는 마을에는 함께 꾸는 꿈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