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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도시 노인의 스펙, 지하철 무임승차

등록 2022-02-07 19:51수정 2022-02-08 02:32

지하철 노인 전면 무임승차 정책은 올해 시행 38년 차를 맞는다. 서울 종로구 종로3가 지하철역 개찰구를 향해 걸어가는 어르신들의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하철 노인 전면 무임승차 정책은 올해 시행 38년 차를 맞는다. 서울 종로구 종로3가 지하철역 개찰구를 향해 걸어가는 어르신들의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편집국에서] 이순혁 | 전국부장

3~4년 전 어느 주말 오후. 부부싸움 뒤 집을 나섰다. 쫓겨난 것인지, 스스로 박차고 나온 것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여튼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집 근처 전통시장의 막걸리집을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막걸리와 함께 나온 부추전이 혼자 먹기에는 많아 보였다. 조금 떨어져 옆에 나란히 앉아 계시던 어르신들이 눈에 띄었다.

“이 전 좀 나눠 드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혼자 먹기에는 양이 좀 많아서요.”

“아이고, 고맙네. 이 녹두전도 나눠 먹읍시다.”

자연스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일흔을 갓 넘긴 두 노인은 서울 영등포구에 있던 ㅎ제과 공장을 30~40년 동안 함께 다니다 퇴직한 분들이었다. 한쪽은 몇년 전 아들 앞으로 새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아들이 결혼할 생각을 안 해 걱정이라면서도 “아파트값이 많이 올라 10억원대”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자그만 상가건물을 사서 꼭대기 층에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는 다른 쪽도 “아파트도 아닌데 뭘…”이라며 겸양을 보였지만, 상가 월세 얘기를 할 땐 여유가 느껴졌다.

양천구, 강서구 쪽에 산다는 그분들께 ‘무슨 일로 서대문구까지 오셨냐’고 여쭸다. “우리 나이에 뭐 할 일이 있겠나. ‘공짜 지하철’을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안산 자락길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와봤지.”

산을 찾고 막걸리 잔을 기울일 정도의 건강, 경제적인 여유, 오랜 친구와의 마실에 ‘나름 부러운 노년 생활을 보내시는구나’란 생각도 잠시,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지하철이 없는 지방 중소도시에 사시며 버스비도 아까워 한두 정거장 거리는 걸어다니시는 분.

기사로나 보았던 ‘지하철로 유람하는 노인들’을 보며, 머릿속에서는 ‘한평생 열심히 살았으니 사회가 이 정도 혜택은 줄 수 있지’, ‘그렇다면 그 혜택에서 제외된 지방 노인들은 뭔가’라는 두 가지 상념이 부닥쳤다. 지방 출신이라 그럴까, 아무래도 후자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런저런 근거를 대보려 했지만, 지방 노인에 대한 역차별이자 소득재분배에도 어긋나는 역진적인 정책 아니냐는 의구심은 풀리지 않았다.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제도는 폐지하되 그 액수만큼을 소득과 교통 불편 정도 등에 비춰 필요한 분들에게 지원하는 건 어떨까, 하고 나만의 잠정 결론을 내렸더랬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는 1980년 국무회의에서 70살 이상의 고령자에게 요금 50% 할인해주기로 의결하면서 시작됐다. 1년 뒤 노인복지법이 제정되면서 대상이 65살로 낮아졌고, 3년 뒤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개통을 계기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65세 이상의 노인에 대해서는 무료로 승차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조선일보> 1984년 5월23일치 1면)

올해 시행 38년차인 ‘지하철 노인 전면 무임승차 정책’은 종종 사회적 이슈가 되곤 한다. 무임승차 대상이 급격히 늘면서 무임승차로 인한 6대 도시철도 한 해 적자액이 2015년에 이미 5천억원을 넘어섰고, 현재는 7천억~8천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단다. 여기까지가 전부가 아니다. 1984년 당시 4% 수준이던 고령층(65살 이상) 인구 비중은 올해 17.5%로 늘었는데, 2030년엔 24.3%, 2060년엔 40%에 이를 전망이란다.

나만의 잠정 결론과는 다른 방향이지만 ‘노인들에게 공공교통 서비스인 지하철 무료 탑승 정도 혜택은 주자’고 결론 내릴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이 경우에는 그 합의 주체인 현세대에서 요금 문제를 해결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용자들의 요금에 반영해서 말이다. 왜 무책임하게 빚으로 쌓아 둬 후세대에게 부담을 물려주는가. 하지만 지방자치단체가 국비 보조를 요구하고, 정부가 이를 거부했다는 것 외에 이와 관련된 논의는 수년째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인 연령 조정(65살→70살)에라도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그마저도 사라진 지 몇해다.

물론 요금 인상도, 무임승차 폐지도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선거를 앞두고 누가 그런 말을 쉬이 할 수 있겠나. 그래서 이번 대선(과 지방선거) 뒤가 결론을 내릴 골든타임 아닐까. 누가 당선되건, 어떤 식으로건, 현세대가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이나 의무를 지는 방식으로 말이다.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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