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초 미국 몬태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 <파워 오브 도그>의 스틸컷
[크리틱] 정영목 | 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1925년 미국 몬태나를 무대로 한 제인 캠피언의 <파워 오브 도그>는 피터(코디 스밋맥피)의 목소리가 앞뒤 양쪽에서 프레임처럼 덧씌워져 있다. 맨 앞에 나오는 보이스오버는 어머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데 어머니를 구하지 못한다면 내가 무슨 남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영화의 제목이 나오는 성경 구절인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이사야>)를 읽는 피터의 목소리다. 둘을 붙여 보면 이 영화는 피터가 어머니 로즈(커스틴 던스트)를 “개의 세력”인 의붓삼촌 필(베네딕트 컴버배치)로부터 구하고 자신이 남자임을 증명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처음에 소 떼와 함께 카리스마 넘치는 카우보이 목장주 필을 보여주고, 이어 여러 면에서 카우보이답지 않아 그에게 면박을 당하는 남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 뒤이어 남편을 잃은 뒤 혼자 식당을 운영하는 로즈를 보여준다. 카우보이 집단이 드러내는 마초 문화의 핵 역할을 하는 필이 로즈의 아들 피터가 사내답지 못하다고 조롱한 뒤, 조지는 동병상련의 느낌으로 로즈와 가까워지다 결국 그녀와 결혼하여 목장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필이 그녀가 돈을 노리고 결혼했다며 멸시하자 로즈는 알코올에 빠지는데, 이때쯤 우리는 보이스오버의 주인공이 피터였음을 짐작하게 된다.
동시에 우리는 그의 발언에 대한 의심에 빠져든다. 그것은 피터가 과연 어머니를 구하고 남자다움을 논할 만한 사람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혹시 필이라면 몰라도. 그러나 제인 캠피언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은 이때부터다. 그는 감추어져 있던 게 드러나는 언뜻 충격적인 장면보다는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모호해지는 수많은 장면을 통해서 남성에 대한 이런 카우보이적 고정관념을 서서히 흔든다. 그 결과 우리는 뒤집히기만 했을 뿐 여전히 고정된 또 하나의 관념으로 섣불리 나아가기보다는 모호함을 모호한 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게 된다. 주로 스밋맥피의 절묘한 연기를 통해 표현되는 이런 모호함은 단지 스릴러적인 플롯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성과 관련된 정체성이나 관계의 복잡하고 모호한 면의 재현이다.
예를 들어 피터는 게이일까? 그가 게이를 유혹할 만큼 게이적이거나 영리한 건 분명하지만 그 이상은 분명치 않다. 피터에 대한 로즈의 집착은 뭘까? 필은 피터에게 ‘너를 “계집애 같은 놈”으로 만드는 게 네 어머니’라고 질타하는데, 이때 피터의 반응은 모호하다. 그러나 이어지는 어머니 방 시퀀스에서 어머니가 이 모자의 과거를 짐작하게 하는 방식으로 다가갈 때 피터는 그것을 거부하고 자기 나름으로 그녀를 구할 방식을 찾아 나선다. 이때 그가 실제로 어른이, 또는 남자가 된 거라면 그를 그렇게 만들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필인 셈이다.
결국 필은 자신이 피터에게 가르쳐준 것 또 승계하고자 했던 것 때문에 무너지고, 더불어 자신에게 우상이자 특별한 존재였던 브롱코 헨리와 맺었던 관계를 그와 재현하려던 꿈도 무너진다. 이것은 단순히 개별적 관계에 대한 꿈이 아니다. 장례식 장면에서 조지 부부가 상속자로 승인받는 정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것은 목장을 누가 지배하느냐 하는 큰 그림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아마도 필은 로즈와 조지 같은 열등한 이성애자들이 주도하고 청결한 문명적 파티를 통해 유지되는 목장 권력에 맞서, 강력하고 배타적인 카우보이 집단의 지지를 받으며 계속 목장을 지배할 수 있기를 바랐고, 그런 면에서 피터는 손을 잡아야 할, 또 쉽게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터는 여러 면에서 모호할지언정 필이 무엇보다도 “개의 세력”이라는 생각에는 흔들림이 없었고, 그 점에는 마지막 장면을 피터의 미소에 할애한 캠피언도 동의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