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의료진이 지난해 2월27일 코로나19 화이자 백신을 주사기에 나눠 담으며 접종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손아람 | 작가
빛의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 19세기에 실험으로 확인되었고 아인슈타인 특수 상대성 이론의 근간을 이루는 공리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지 직접 측정해본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학창 시절 누구나 뉴턴의 운동 법칙을 사용하여 힘의 크기를 계산하느라 머리를 쥐어 쌌지만,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직접 읽고 검증해본 사람 역시 거의 없다. 게다가 우리는 콜럼버스처럼 지구를 한바퀴 돌아보지 않고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과학을 신뢰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과학 이론에 등장하는 난해한 기호를 숭배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인슈타인과 뉴턴과 갈릴레오의 작업과, 그들을 승인한 과학자 집단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토머스 쿤은 발견이 아닌 합의에 가까운 과학 모형을 ‘패러다임’이라고 불렀다. 쿤의 개념을 확장하면, 과학을 신뢰하는 사회는 과학 집단의 권위를 신뢰하는 사회이며 과학을 신뢰하지 않는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다. 그것은 단순히 더 똑똑하거나 더 무지한 사회와는 약간 다른 의미다.
과학보다 더 큰 힘을 갖는 신념체계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과학은 거부된다. 역사적으로 종교가 그런 역할을 했다. 생명의 진화를 주장했던 다윈은 재판에 회부되었고, 지금도 그런 믿음에 머무는 종교인들의 상당수가 진화론을 거부한다. 하지만 이들이 반지성적이라고 비판하는 진화론의 신봉자들이 꼭 진화 이론서나 논문을 독파하고 직접 검증해서 진실한 안목을 얻은 건 아니다. 신에 대한 믿음보다 과학적 사고에 더 익숙하고, 성서 연구집단보다 과학 연구집단을 더 신뢰하는 믿음체계를 선택한 것일 뿐이다. 이제 과학은 종교의 박해를 넘어섰지만, 더 강력한 상대와 맞닥뜨리고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백신을 믿지 못할까? ‘무지해서’라고 단정하려면 반대로 백신 옹호자들은 백신에 대한 지적 이해를 갖추었어야 한다. 하지만 현직 의사들도 코로나 백신의 작용 기전이나 부작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백신 반대자들이 높은 비율로 “제약회사를 믿을 수 없다”고 응답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백신 거부자들은 과학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진리 탐구 작업이 기술 자본의 영리 추구 성향을 버텨낼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들은 대개 자본이 가진 힘을 잘 이해하며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다.
보수주의자들이 사회적 재난에 더 민감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사회학적 통설이지만, 이 이론은 유독 백신에 대해서만은 적용되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에서 백신 반대자들의 보수적인 성향이 전세계적으로 확인되었고, 민영 의료체계를 경험한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오히려 백신에 대한 반감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음미해볼 대목이다. 이들은 기업의 이윤이 최대가 될 때 사회적 후생도 최대가 된다는 주장을 수긍하고, 기업의 혁신이 세상을 더 나은 곳을 만든다는 주장도 수긍하지만, 기업이 이윤 추구 과정에서 자신의 건강까지 지켜줄 거라고는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 목숨이 경건한 시험대에 오르자 벌거벗은 솔직함이 드러난 셈이다. 그저 무지를 탓할 수 있을까? 가습기 살균제가 생명을 앗아갈 동안 유독성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이 침묵하고, 유망한 의료기술기업의 창업자들이 회사를 망가뜨리면서까지 돈다발을 챙기고, 피라미드에서 기술적으로 오천년을 나아간 건축물이 완공되기도 전에 붕괴하는 광경을 우리는 목격한다. 과학이 자본의 욕망에 맞설 위상을 가졌는지 의심해보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나는 3차까지 백신을 맞았다. 의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과학이 추구하는 진실이 여전히 강건하다는 ‘믿음’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백신을 수용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터다. 나는 과학자들이 이 믿음에 보답하길 바란다. 멍청하게 굴지 말고 과학의 결과물을 받아들이라고 윽박지를 게 아니라, 믿음을 회복하게 하는 목소리를 함께 내주었으면 한다. 특허의 장벽 안에서 폐쇄적인 정보를 독점하고, 공공 안전 목적으로 사실상 의무접종 중인 백신의 가격을 제멋대로 책정하고, 우월한 협상력으로 정부로부터 부작용에 대해 면책받는 제약회사들에 합당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해줬으면 한다. ‘과학적 증명’과 ‘과학이 사회적 신뢰를 얻을 만한 대상임을 증명’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딱 과학과 사회만큼의 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