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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기억하자, 부동산은 금융이다

등록 2022-01-18 15:13수정 2022-01-19 02:32

2020년 7월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잠실 아파트 단지의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20년 7월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잠실 아파트 단지의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박복영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주식시장은 기억력이 나쁘기로 유명하다. 과거에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도 거품이 만들어지고 꺼지는 일이 반복된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거품은 망각하기에 딱 좋을 정도로 이따금씩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품 속에는 주가가 오를 만한 이유도 같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의 기억력은 주식시장보다 더 나쁘다. 부동산 거품이 주가 거품보다 더 가끔씩 생기고, 오를 만한 이유는 더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제 부동산 거품이 사라질 조짐들이 보인다. 거품이 사라진다 해도 이것만은 꼭 기억하자. “부동산 거품을 만드는 것도, 그것을 잠재우는 것도 모두 금융”이라는 사실을.

부동산 가격 상승을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펀더멘털형 상승이다. 오를 만한 이유가 있어서 오르는 것이다. 특정 지역에 공급이 부족해 오를 수도 있고, 사람들 소득이 늘어서 오를 수도 있다. 신축 아파트라서 오를 수도 있고, 지하철이 생겨서 오를 수도 있다. 이런 상승은 수급이나 주택의 내재적 가치, 즉 펀더멘털을 반영한 상승이다. 문제는 이런 내재적 가치 이상으로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한번 가격이 오르면 지속적 상승을 기대해 가수요와 거품이 형성될 수 있다. 30만큼 오르는 것이 정상인데 일시적으로 100만큼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면 70은 버블형 상승이다. 금융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오버슈팅이라고 부른다.

부동산 가격의 오버슈팅은 금리 인하와 겹치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기억하는 국내외 부동산 버블은 모두 그렇다. 가장 대표적인 부동산 버블은 1980년대 후반 일본 사례다.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화 가치가 급등하자, 경기 위축을 우려한 일본은행은 금리 인하를 시작했다. 그 결과 엄청난 부동산 버블이 생겼다. 다음은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부동산 폭등 사례다. 2000년부터 경기가 둔화되자 금리 인하를 시작했고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금리 인하는 가속화했다. 우리나라 사례는 노무현 정부 당시의 부동산 폭등이다. 2001년 벤처붐이 꺼지고 경기가 악화되자 금리 인하가 시작되었다. 기준금리는 5%에서 3.25%로 떨어졌고 유동성은 부동산시장으로 몰렸다. 지금의 버블도 2%대의 기준금리가 0%대로 떨어지는 와중에 나타났다. 저금리가 반드시 부동산 거품을 가져오지는 않지만, 부동산 거품이 만들어질 때는 꼭 값싼 자금과 쉬운 대출이 있었다. 유동성은 불을 지피는 연료이기 때문이다.

이런 거품은 폭락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거품 붕괴로 끝났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끝났다. 위기로 가기 전에 불을 끈다면 그것은 유동성 흡수와 금리 인상을 통해서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3월 총부채상환비율(DTI) 도입,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강화, 같은 해 10월 이후 다섯 차례 기준금리 인상으로 겨우 이 불길을 잡았다. 그전에 공급 부족 아우성에 대응해 송파, 김포, 양주 등에 대규모 신도시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공급 대책은 별 효과가 없었고 결국 불길을 잡은 것은 유동성 흡수와 금리 인상이다. 작년 8월 금융당국이 대출을 엄격히 규제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조기 도입한 것, 그리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 반전의 계기가 되었다. 부동산 열풍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다소 과할 정도의 정책이 아니면 거품을 잠재울 수 없다. 전체 경제 상황을 보지 않고 부동산만 보는 사람들은 공급 부족이 문제라고 말하고, 유동성과 저금리를 얘기하면 핑계라고 일축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버블형 상승을 잠재우는 것은 공급 확대나 세금이 아니라, 금융 수단이다.

차기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가장 큰 기대는 부동산 가격 안정이다. 그런데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후보들이 금융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공급대책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시장을 다시 자극할 말들을 하고 있다. 공급대책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하면 될 일이며, 당장은 지금의 금융정책 방향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꺼져가는 불길이 다시 피어오르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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