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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뉴노멀-혁신] 선동에 맞서는 주문, 트릴레마

등록 2022-01-09 18:05수정 2022-01-10 02:31

김진화 | 연쇄창업가

사이다, 콜라를 마시지 않는다. 청량음료라는데 전혀 청량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이다 발언’도 경계하는 편이다. 당장 듣기엔 시원·달콤한데 세상사의 복잡다단함을 은폐한다. 복잡한 걸 단순화하는 이들이 대개는 일을 더 꼬이게 만든다. 난마처럼 얽혀 세무사, 공무원 할 거 없이 세금 산정조차 어렵게 만든 작금의 부동산 정책 같은 게 대표적이다.

사이다 발언과 단순화 신공의 비법은 간단하다. 일단 세상사를 이항대립 구조로 단순화한다. 거기에 흑백논리 한 스푼이면 충분하다. “선거는 한일전” 같은 구호가 가장 저급한 형태의 모범사례다. 위대한 선동가 마오쩌둥조차도 사회의 여러 모순이 중층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나아가 주요 모순과 부차적 모순으로 논리적 위계화하는 성의 정도는 보였다. 21세기 한국의 선동가들은 이런 수고마저 번거롭게 느끼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주거안정이 핵심이어야 할 부동산 문제를 불로소득과 그 징벌의 문제로 치환하는 대담함을 보이지는 못했을 테다.

복잡해진 세상은 딜레마 이상의 분석틀을 요구한다. 경제학에서 통용되던 트릴레마가 널리 쓰이는 이유다. 복지수준-조세부담률-국가채무비율 사이의 모순과 긴장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재정 트릴레마다. 세가지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포기하거나 희생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얼마 전 논란이 됐던 현대통화이론(MMT)의 등장 배경이다. ‘성장이냐 분배냐’ 식의 이항대립보다는 훨씬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한다.

요즘 ‘전가의 보도’처럼 거론되는 블록체인도 트릴레마를 안고 있다. 탈중앙성-보안성-확장성의 긴장관계. 은행 등 중앙기관 없이도 거래할 수 있는 탈중앙성이 증진되면 보안성이 취약해지는데, 이를 위해 모두가 승인 과정에 참여하다 보니 확장성이 떨어지는 비트코인의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들은 대개 탈중앙성이 비트코인만 못하다. 비트코인 논쟁이 한창이었을 때, “비트코인이 확장성까지 보완하지 못하면 망할 것”이고 따라서 “거래 속도를 늘리는 방식으로 새로운 복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트릴레마를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그 뒤 비트코인은? 확장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다.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결혼생활 역시 트릴레마를 낳는다. 낭만적 연애의 종착역이라는 환상 속에서 시작한 결혼생활은 낭만성에 더해 육아 등의 책임이 더해지고 여기에 관능적인 잠자리 파트너로서의 역할까지 부여된다. 육아에 지쳐 잠자리에 들었는데 관능적일 수 없고, 함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가는 동지적 관계가 낭만적이긴 어렵다. 성격 차이, 경제적 갈등 등으로 퉁쳤던 불행의 원인이 좀 더 선명해진 느낌이다.

트릴레마로 문제를 대하는 것의 진정한 효용은 무언가는 포기하거나 희생해야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는 평범한 진실을 깨닫게 되는 데 있다. 이른바 좋은 게 좋은 거고, 조금만 참고 다 잘해나가면 만사형통, ‘위 아 더 월드’가 될 수 있다는 행복회로 작동을 막아주는 데 유용하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강남 아파트 주인들이 돈을 많이 벌 공산이 커진다. 당장 배가 아프더라도 다수의 주거안정을 위해 공급을 늘리는 쪽으로 당분간은 가자고 설득하고 중장기적으로 불평등 개선을 위해 책임지고 대비를 하는 게 바람직한 리더십 아닐까. 마찬가지로 복지를 늘리는 만큼 증세하자고 설득하거나, 정권이 책임지겠으니 재정 지출을 늘려서라도 위기를 극복하자는 태도. 그러나 현실은 책임은 지지 않고 다 해주겠다는 난장판 대선이다. 복잡함을 복잡함 그대로, 어려움을 어려움 그대로 받아들이고 설득하는 한편, 합의된 내용은 단순·간결하게 실행하는 진짜 리더십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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