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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중국,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도 5G 우위 점하다

등록 2021-12-27 18:04수정 2021-12-28 02:01

박현의 G2 기술패권 _09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은 화웨이의 통신망 확장에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아직은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미국의 일부 핵심 동맹국들은 미국에 동조하고 나섰지만 미·중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나라들도 적지 않다. 또한 이미 화웨이 통신장비를 설치한 나라의 경우에는 다른 회사 제품으로 교체할 경우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문제도 있다.

런정페이 화웨이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가 2019년 2월18일 <비비시>(BBC) 방송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당시 “미국이 우리를 무너뜨릴 방법은 없다”고 밝혔다. <비비시> 화면 갈무리
런정페이 화웨이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가 2019년 2월18일 <비비시>(BBC) 방송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당시 “미국이 우리를 무너뜨릴 방법은 없다”고 밝혔다. <비비시> 화면 갈무리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가 지난달 3일 대미 결사 항전을 다짐하는 사내 행사를 열었다. 행사명은 ‘퇴로가 없어도 승리의 길로―군단 창설대회.’ 행사명만 보면 마치 군대의 새로운 부대 창설대회 같다. 군사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는 런정페이(77)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의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이 회사가 지금 겪고 있는 절박한 상황과 함께 이를 극복하려는 단호한 의지가 읽힌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 보도를 보면, 런정페이 창업자는 이 행사에서 임직원들에게 “평화는 투쟁을 통해서 쟁취할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30년간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해 노력해야 하며 영웅적인 희생을 해야 한다. 그래야 아무도 우리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스스로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제재 초기인 2019년 2월 영국 <비비시>(BBC)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이 우리를 무너뜨릴 방법은 없다”며 항전 의지를 밝힌 바 있는데, 그때보다 비장감이 더 느껴진다.

화웨이가 이날 창설한 ‘군단’은 석탄 광산, 항만, 스마트 고속도로, 데이터센터 에너지, 스마트 광발전 등 5개로, 제재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분야다. 이 ‘군단' 조직은 기초 연구자와 기술·상품·마케팅·애프터서비스 등 각 분야 전문가를 한 부문으로 묶어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화웨이 내부 소식통은 <글로벌 타임스>에 “우수 인재를 집중 투입해 돌파구를 만들고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창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웨이의 이런 움직임은 미국의 제재로 입은 타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2018년부터 화웨이에 대한 공세를 시작한 미국은 2019년 5월에는 화웨이를 아예 무역 제재 대상 기업으로 등재해, 미국 기업들이 정부 승인 없이는 화웨이와 거래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어 2020년 9월에는 이를 미국 장비를 사용해 부품을 생산한 외국 기업들에도 적용함으로써,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사실상 차단했다. 이에 따라 한때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로 등극했던 화웨이는 스마트폰 사업이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화웨이는 올해 1~3분기 매출이 4558억위안(84조81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무려 32.1%나 감소했다. 매출 감소액이 2155억위안(약 40조1000억원)에 이른다. 매출 감소의 대부분은 스마트폰 사업에서 발생했다. 화웨이는 반도체 칩 조달이 계속 어려워지자 지난해 11월 중저가 스마트폰 브랜드인 ‘아너’(Honor)를 중국 선전지방정부가 대주주인 컨소시엄에 매각한 바 있다.

그러나 궈핑 화웨이 순환회장은 올해 3분기 실적 발표문에서 “비투시(B2C,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사업 부문은 크게 타격을 받은 반면에 비투비(B2B, 기업 간 거래) 사업 부문은 여전히 안정적”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화웨이 사업 구조의 또 다른 축인 통신장비 부문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통신장비 부문은 중장기 계약이 많은 기업 고객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인 미국 델오로 그룹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화웨이는 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 2015년 이후 6년째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은 2019년 28%에서 지난해 31%까지 높아졌다가 미국의 제재 여파로 올해 상반기에 28.8%로 하락했다. 그러나 여전히 2·3위와 격차가 크다. 스웨덴 에릭슨은 지난해 14.7%에서 올해 3분기 15%로 소폭 올랐으나, 핀란드 노키아는 같은 기간 15.4%에서 14.9%로 오히려 하락했다.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2.4%에서 3.2%로 점유율을 높였다. 미국 시스코는 2015년 8%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6~7%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미국이 화웨이 제재를 하면서 대안으로 내세운 오픈 랜(개방형 무선네트워크) 공급업자들의 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미국이 화웨이의 통신장비 시장 우위 구도를 흔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화웨이가 가격경쟁력과 함께 탄탄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화웨이는 2019년부터 상용화가 시작된 5세대 이동통신(5G) 표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독일 지식재산권 조사업체인 아이플리틱스가 지난달 발표한 ‘누가 5G 특허 경쟁을 주도하는가’ 보고서를 보면, 올해 9월 기준으로 화웨이가 세계 5G 유효 특허의 15.9%를 보유해 1위를 차지했다. 업계가 인정하는 5G 기술표준 기여도에서도 화웨이가 23.2%로 1위였다.

화웨이의 이런 성장 이면에는 자체 기술 개발 노력도 있지만,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 정책과 디지털 실크로드 정책도 큰 도움이 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취임 초기인 2013년부터 중국과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육로와 해로로 연결해 경제권을 형성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했다. 이어 2015년부터는 일대일로 참여 국가에 통신네트워크·클라우드컴퓨팅 등을 지원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정책을 폈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화웨이 같은 중국 기업들도 보조를 받았다. 그 결과 아프리카의 경우, 화웨이가 아프리카 4G 통신네트워크의 70%를 설치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은 화웨이의 통신망 확장에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아직은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미국의 일부 핵심 동맹국들은 미국에 동조하고 나섰지만 미·중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나라들도 적지 않다. 한편에선 미국의 우려를 덜어주면서 다른 한편에선 중국을 자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화웨이 통신장비를 설치한 나라의 경우에는 다른 회사 제품으로 교체할 경우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문제도 있다. 4G와 5G 기술이 연동돼 있어 화웨이의 4G 기술을 채택했을 경우 5G도 화웨이 제품을 채택하는 것이 비용과 효율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미국외교협회(CFR)가 올해 3월 기준으로 각국의 정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화웨이 장비를 즉각 금지한 나라는 8곳이다. 영국·오스트레일리아 등 ‘파이브 아이스’ 소속 국가와 일본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인도·프랑스 등 일부 국가는 공식적인 금지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자국 업체들에 화웨이와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향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아이슬란드·터키·헝가리 같은 나토 회원국과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같은 중동 국가들은 화웨이 제품 사용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외교협회는 “미국의 압박이 일부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한계에 직면할 것 같다”며 “정보공유·안보협약의 손실 위협이 미국과 공식 동맹국이 아닌 나라들을 설득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협회는 주요한 이유로 미국이 화웨이 장비를 대체할 만한 경쟁력 있는 대안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미-중 간 5G 경쟁력 격차는 상당히 벌어져 있다.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인 벨퍼 센터는 이달 초 보고서(‘미-중 간 거대한 기술경쟁’)에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5G 가입자는 중국 1억5천만명, 미국 600만명이고, 5G 기지국은 중국 70만곳, 미국 5만곳이고, 5G 평균속도는 중국 300Mbps, 미국 60Mbps로 차이가 난다며 “거의 모든 핵심 지표들이 중국이 5G의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는 예측을 지지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조바심을 낼 만하다.

이에 따라 미국은 중국 통신업체들에 대한 고립화 전략을 지속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6G 기술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국가 안보 우려를 이유로 화웨이·중싱통신(ZTE) 등 중국 통신장비 업체들의 제품을 미국 통신망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안장비법’에 서명했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일본·영국 등 정상과의 회담에서 5G·6G 기술 개발에 공동투자한다는 공동성명을 내기도 했다.

미-중이 통신기술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것은 이 기술이 경제적 파급효과뿐만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은 초기 음성통화 중심에서 3G부터 데이터통신으로 전환되면서 데이터 전송속도를 빠르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5G는 4G보다 데이터 전송속도가 20배나 빠른 특성뿐만 아니라, 사용자 그룹이 사람에서 서버-기계 간 통신으로 확장됐다. 자율주행·원격의료·사물인터넷·인공지능·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기반 기술이 된 셈이다. 6G에서는 5G에서 씨앗이 뿌려진 이런 산업 간 융복합 기술과 서비스가 더 발전된 형태로 발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기술은 우주기술과 최첨단 군사 시스템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미·중이 사활을 걸고 5G·6G 개발에 매진하는 이유다.

박현 | 논설위원. 1994년부터 경제·국제·사회부에서 주로 일했으며, 워싱턴특파원·국제부장·경제부장·부국장 등을 지냈다. 특파원 시절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산복합체 등을 취재했으며, 2015년 미국의 사드 배치 의도를 폭로한 보도로 관훈언론상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첨단기업과 금융회사들의 발전상을 현장 취재했다. G2의 패권 경쟁이 한국 경제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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