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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기룡 전 검사는 후배의 인터뷰를 읽어보기는 했을까

등록 2021-12-27 16:02수정 2021-12-28 11:32

지난 1월13일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최아무개씨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뒤 박준영 변호사(오른쪽)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13일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최아무개씨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뒤 박준영 변호사(오른쪽)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이순혁 | 전국부장

언제는 안 그랬겠냐마는 요즘도 ‘다이내믹 코리아’를 입증이라도 하듯 하루가 멀다 하고 쇼킹한 뉴스들이 쏟아진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 관련 뉴스도 많고, 며칠 걸러 한번씩 터지는 각종 강력 사건과 아동학대 사건 등을 보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런 뉴스 홍수 속에서 인상 깊었던 보도를 꼽아 보라고 한다면, 김훈영 검사의 사과 소식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2000년 8월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40대 택시기사가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사건 현장 인근에서 도주하는 범인을 목격한 다방 커피배달원 최군(당시 15살)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경찰 기소 의견 송치→검찰 구속 기소→1심 징역 15년 선고→항소심 징역 10년 확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003년 인근 군산경찰서에서 진범과 그 조력자가 검거되고 자백까지 했지만, 군산지청은 경찰의 영장 신청을 계속 기각하며 수사를 무산시켰다.

징역 10년을 채우고 출소한 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택시기사 사망보험금과 이자 1억4천만원을 물어내라는 구상권 청구까지 당한 최씨는 박준영 변호사를 만나 재심을 신청한다. 검찰 반대에도 2015년 6월 재심이 결정되고, 2016년 11월 최씨는 무죄를 선고받는다. 그제야 검찰은 진범 김아무개씨를 수사해 기소하고, 2018년 3월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이 확정된다. 꽤 널리 알려진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이야기다.

최씨는 억울한 옥살이 대가로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을 받고 손해배상 소송(1심)에서도 승소했다. 하지만 “폭행과 위법 수사로 15살 소년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박준영 변호사) 경찰은 물론, ‘범인이 아니다’라는 그의 호소를 외면했던 검사·판사들은 말이 없었다. 그런데 김훈영 검사가 지난 8월 최씨를 만나 사과한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김 검사는 군산경찰서에 붙잡힌 진범을 2006년에 무혐의 처분한 검사다. 최군을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 2003년 수사를 무산시킨 검사가 더 큰 잘못을 했을 수 있지만, 김 검사는 <한국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최종 처분한 검사의 무게라고 본다.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례 없는 ‘검사의 사과’ 기사를 보며, (사건의 황당함은) 비슷하면서도 (검사 태도는) 정반대인 한 사건이 떠올랐다.

2012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서울 마장동 육류 수입업자를 수사하다 윤우진 전 서울 용산세무서장의 뇌물 혐의를 확인한다. 국세청에서 검찰, 언론 등을 상대하는 대외업무를 오래 담당해 각계에 발이 넓었다는 윤 전 서장 수사는 난항을 겪는다. 뇌물·접대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압수수색 영장은 검찰 단계에서만 여섯번이나 기각됐다고 한다. 윤 전 서장은 수사망을 피해 그해 8월 돌연 출국했다가, 8개월 만에 타이에서 체포돼 국내로 압송된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에도 그의 구속영장을 반려하고 풀어줬다.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받은 뒤엔 1년 반 동안 사건을 뭉개더니, 결국 2015년 2월 무혐의 처분했다. 이를 근거로 그는 파면당했던 국세청에 복직해 정년까지 마치고 퇴직한다.

누가 봐도 이상한 사건 흐름이었지만, 배후에 유력 대선 후보가 연루돼 있다는 정치적 소용돌이가 인 뒤에야 재수사가 시작됐고 윤 전 서장은 지난주 다른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육류업자 뇌물 혐의도 재수사가 진행 중이란다.

검찰은 당시 왜 이런 황당한 결론을 내렸을까. 윤 전 서장을 무혐의 처분한 주임검사였던 조기룡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겨레>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자 “바쁩니다”란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다시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도 넣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지난해 교보생명 전무(법무지원실장)로 영입돼 오너의 경영권 방어와 관련된 중요한 재판을 총괄해 역할이 막중하다는 기사가 떴다.

회장님 보필이 중하긴 하겠으나, 명색이 검사였다는 이가 바쁘다는 이유로 자기 이름으로 처리한 사건에 관해 최소한의 이야기도 못 하겠다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검사는 결정문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처분한 것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는 후배 검사의 인터뷰를 읽어보긴 했는지 궁금하다.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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