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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구를 파괴할 혜성이 온다

등록 2021-12-26 19:14수정 2021-12-26 19:44

[한겨레 프리즘]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서정민 | 문화팀장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런스)는 태양계에서 궤도를 돌고 있는 낯선 혜성을 발견한다. ‘유레카’급 발견이다. 담당 교수 랜들 민디 박사(리어나도 디캐프리오)도 제 일처럼 기뻐한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혜성의 경로를 계산해보니 믿기 힘든 결과가 나온다. 정확히 6개월 14일 뒤 지구와 충돌한다는 것. 충격에 빠진 이들은 분주히 대책 마련에 나선다.

어디서 많이 보던 설정인데? 영화 도입부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고전적인 할리우드 에스에프(SF) 블록버스터의 클리셰. 20년도 더 된 브루스 윌리스 주연 <아마겟돈>(1998)과 <딥 임팩트>(1998)부터 지난해 개봉한 <그린랜드>까지 여러 영화가 머릿속에 스쳤다. <빅쇼트>(2016)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바이스>(2019)로 딕 체니 미국 전 부통령을 ‘웃프게’ 풍자했던 애덤 매케이 감독의 신작치곤 맥이 좀 빠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라? 갈수록 상황이 묘해진다. 민디 박사와 디비아스키는 백악관의 호출을 받고 급히 워싱턴으로 날아가지만, 어째 대통령(메릴 스트리프)은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6개월 뒤 에베레스트산만 한 혜성이 남태평양 바다에 떨어져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0억배에 이르는 파괴력으로 지구를 초토화할 거란 말에도 대통령은 놀라거나 조급해하는 기색이 없다. 그의 관심은 온통 코앞에 닥친 중간선거에만 쏠려 있다.

답답해진 이들은 언론사를 찾아간다. 뭔가 심각한 상황임을 알아챈 듯한 신문사는 각 잡고 기사화하는 대신, 이들을 인기 시사 토크쇼에 출연시키는 전략을 택한다. 그래야 대중의 관심을 끌 거란 판단에서다. 토크쇼에서 이들 얘기는 유명 가수 커플의 결별과 재결합 소식 다음으로 다뤄진다. 충격적인 폭로를 했건만 진행자들은 연예계 가십처럼 가볍게 다루고 넘어간다. 결국 이 소식은 온라인에서 일기예보나 교통 상황보다도 못한 트래픽에 그치고, 신문사는 후속 보도를 포기한다.

상황이 반전된 건 대통령의 스캔들이 터져 선거 패배 위기에 직면하면서다. 대통령은 핵폭탄을 실은 우주선을 보내 혜성의 궤도를 바꾸는 계획을 깜짝 발표하고, 전지구적 위기를 선거에 활용하려 든다. 하지만 거대 기업가가 혜성 속 희귀 광물이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며 또 다른 방안을 제시하면서 일이 꼬여간다. 대통령은 기업가의 말에 솔깃해하고, 국민들은 두 부류로 갈려 대립한다.

이쯤 되면 뭔가 떠오르는 게 있지 않나? 그렇다. 지구로 다가오는 혜성은 지구온난화·기후변화에 따른 기후위기를 은유한다. 매케이는 <2050 거주불능 지구>라는 책을 읽고 이 영화를 구상했다. 사람들이 도끼 든 살인마를 만나거나 집에 불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알면서, 그보다 훨씬 더 무서운 상황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세태에 경각심을 주고자 지구와 충돌하기 직전의 혜성에 비유했다고 한다.

현실을 보자. 지난 11월13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에서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막을 내렸다. 197개 참가국이 진통 끝에 내놓은 합의문은, 석탄발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선진국은 개발도상국 지원 기후기금을 2025년까지 두배 늘리기로 한 것이 뼈대다. 과연 이런 대책만으로 산업혁명 이전보다 이미 1.2도가량 오른 지구 온도의 상승을 1.5도 밑으로 억제하고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첫 시오피(COP) 회의가 열린 이후 국제사회는 26년간 해마다 합의문을 내왔으나, 혜성과도 같은 기후위기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지구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이 영화 제목은 <돈 룩 업>(Don’t Look UP)이다. 최근 극장 개봉에 이어 24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그래서 결말은 어떻게 됐냐고? 직접 확인하시라. 그리고 뭔가 느꼈다면, 당장 행동하라. 고개 박고 눈앞 이득만 보지 말고, 고개 들어 위를 봐야 산다.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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