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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심채경의 랑데부] 한국형 달 탐사선, 너의 이름은

등록 2021-12-23 18:15수정 2021-12-24 02:31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런 일이다. 우리 주변의 몇몇 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 속 옥토끼라는 이름을 달 로버에 붙일 기회를 중국이 선점한 것은 아쉽지만, 길고 추운 달의 밤을 몇번이나 버티면서 활동을 이어간 옥토끼, 위투의 이름을 논문이나 발표자료에서 마주칠 때면 마음속으로 따뜻한 응원을 보내게 된다.

심채경 | 천문학자

이맘때 밤하늘에는 크리스마스트리라고 불리는 성단이 있다. 겨울철 대표 별자리인 오리온자리의 동쪽에, 마치 장식용 전구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두른 전나무 형태의 성운이 있다. 눈으로는 보기 어렵고 망원경이나 천체 관측용 쌍안경으로 보아야 하는데, 아무리 좋은 관측 기기를 갖추었다고 해도 밤하늘에 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대번에 알아보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 사실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로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닮은 모양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길쭉한 세모꼴이라고 봐줄 수 있는 정도의 부연 무언가가 있을 따름이다. 꼭대기에는 가장 큰 별 대신 원뿔 모양의 어두운 성운이 뒤에서 오는 빛을 가로막고 있다. 가장 밝은 별은 나무 아래께에서 찾을 수 있다. 게다가 관측 시간이나 망원경의 방향에 따라 옆으로 눕거나 거꾸로 매달린 듯한 모양으로 보게 된다면 그걸 어떻게 알아보겠는가.

그래도 이름이 크리스마스트리라는 것을 알고 나면, 제법 그래 보이기도 한다. 방향이 다르게 찍힌 사진은 성운의 위쪽이 좁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도록 돌려놓고, 전구에 해당하는 별들을 잇는 가상의 선을 그려가며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일 수 있도록 애쓰기도 한다.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우주라는 거대한 자연 속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기체와 먼지와 별의 조합도 우리가 크리스마스트리라고 불러주면 하나의 존재요, 의미가 된다. 애정이 생겨난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할 때 큰 별을 아래쪽 가지에 달아보며 피식 웃을 일도 생긴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런 일이다. 같은 골목에서 몇차례 만난 고양이에게 손을 내밀며 “나비야” 하고 한번 불러보고 난 뒤면, 어느 날 냉동실에서 꽁꽁 얼어붙은 음식을 꺼내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문득 고양이를 생각하게 되는 법이다. 그 녀석도 발이 시리겠지. 밖은 한겨울인데 어디 몸을 녹일 만한 데는 있으려나 하고.

우리는 생명이 없는 탐사선에도 별명을 지어주고 정을 붙인다. 중국은 달 표면을 탐사하기 위해 작은 로버를 두대 보낸 일이 있다. 로버 시리즈의 이름은 ‘위투’. 중국에서 옥토끼를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달을 방문한 첫번째 위투는 안타깝게도 임무 도중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마침 그 시기에 열린 학회에서 위투의 활동 내용을 발표하던 관계자는 옥토끼가 다시 정신 차리고 일어날 수 있도록 기원해달라는 말로 발표를 마쳤다. 많은 이들의 염원이 무슨 효험이라도 있었다는 듯이, 얼마 뒤 위투는 깨어났다. 우리 주변의 몇몇 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 속 옥토끼라는 이름을 달 로버에 붙일 기회를 중국이 선점한 것은 아쉽지만, 길고 추운 달의 밤을 몇번이나 버티면서 활동을 이어간 옥토끼, 위투의 이름을 논문이나 발표자료에서 마주칠 때면 마음속으로 따뜻한 응원을 보내게 된다.

한반도 상공을 지키며 날씨와 환경, 바다 상태를 전해주는 우리나라 인공위성의 이름은 천리안이다. 연구·개발 문서에서는 정지궤도 복합위성이나 영어 약자인 GK-2로 표기되기도 하지만, 천리안이라고 부를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위성이 천리 밖도 살피는 우리의 눈이 되어주기를 기대하고 오랫동안 별 탈 없이 제 궤도에 머무를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우리나라 로켓을 한국형 발사체나 KSLV-Ⅱ라고 하기보다는 누리호라고 부를 때, 우리 마음속에 누리호가 더욱 자랑스럽게 다가와 뜨겁게 새겨지고 기억되는 것이다.

내년 여름 발사할 우리나라의 달 탐사선에도 좋은 별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한국형 시험용 달 궤도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영어 약자를 따서 KPLO라고도 쓴다. 어느 쪽도 친근감과는 영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 우주 탐사 역사의 첫 장을 여는 탐사선이니 그 이름은 오랫동안 수없이 불리고 기록될 것이다. 애정을 가득 담아, 무사 성공을 염원하며 그 이름을 닳도록 불러주고 싶지만 아직까지 무명씨나 다름없다. 주관 개발기관에서 작명 권한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각자 나름대로 다양한 이름을 붙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동네 길고양이를 사람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듯 우리 달 탐사선도 여러 이름으로 부르다 보면 그중 제일 잘 어울리는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그 이름을 부르고 기억할 수 있도록, 더 뜨겁게 응원하고 격려할 수 있도록, 우리 달 탐사선에도 이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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