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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방탄소년단 제이홉의 ‘콘돔 티셔츠’ / 정혁준

등록 2021-12-22 16:04수정 2021-12-22 18:45

‘깨진 유리창 이론’은 미국 범죄학자 조지 켈링과 정치학자 제임스 윌슨이 1982년 미국 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에 쓴 글에서 나왔다. 작은 범죄를 방치하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범죄 심리학 이론이다.

1994년 뉴욕시장이 된 연방검사 출신 루돌프 줄리아니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해 뉴욕 지하철과 길거리 낙서를 지우고, 신호 위반 무임승차를 적극적으로 단속하도록 했다. 뉴욕 시민들은 강력 범죄에는 대응하지 않고 경범죄만 처벌한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뉴욕시 범죄율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한 지 3년 만에 뉴욕시 강력 범죄가 80%나 줄었다. 줄리아니는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범죄율을 가장 많이 감소시킨 시장으로 등재됐고, 재선에도 당선됐다.

그러나 또 다른 반전이 나왔다.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인 스티븐 레빗이 <괴짜 경제학>에서 ‘깨진 유리창 이론’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레빗은 뉴욕시 범죄가 1990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고 1993년에는 강력 범죄가 이미 20%나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이때는 줄리아니가 시장이 되기 전이었다. 게다가 1990년대 범죄율은 뉴욕만이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줄어들었다고 했다. 심지어 최악의 범죄 도시로 악명이 높던 로스앤젤레스에서도 뉴욕과 비슷할 정도로 범죄가 줄었다는 것이다.

레빗은 뉴욕시의 범죄가 줄어든 이유를 ‘로 vs 웨이드’ 소송으로 설명한다. 이 소송은 텍사스주 댈러스에 사는 여성이 원치 않은 임신을 한 뒤 낙태 수술을 하려 했으나 당시 텍사스주법은 낙태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작됐다. 여성의 가명인 ‘로’를 원고, 댈러스 검사 헨리 ‘웨이드’를 피고로 한 이 소송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다. 1973년 연방대법원은 “정부가 개인의 생명·자유·재산을 박탈할 수 없다”는 수정헌법 14조 ‘사생활 권리’를 들어 낙태를 처벌하는 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사실상 낙태를 허용한 것으로, 이후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법은 폐지됐다.

레빗은 낙태가 허용되면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줄어들어 범죄도 따라 감소했다는 주장을 폈다. 1990년대 초는 연방대법원의 낙태 위헌 결정 이후 태어난 아이들이 10대 후반이 됐을 때다. 이때 범죄율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레빗은 “낙태 합법화가 범죄율을 낮췄다”는 주장의 근거로 통계를 제시했다. 뉴욕·캘리포니아·워싱턴·알래스카·하와이는 연방대법원 결정이 나오기 2년 전부터 낙태가 합법화됐다. 이들 5개 주는 다른 45개 주에 견줘 1998년부터 범죄율이 줄어들었다. 1970년대 낙태가 많이 시행된 주는 1990년대 범죄율이 가장 많이 줄어든 반면, 낙태 비율이 낮은 주에서는 범죄 감소율도 작았다.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여성이다. 레빗은 “여성이 아이를 원치 않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는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결국 범죄를 저지를 확률도 커진다는 게 래빗의 주장이다.

낙태가 범죄를 줄였다는 경제학자의 주장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낙태는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 낙태는 찬반을 놓고 정치·사회적으로 논쟁적이다. 윤리적인 문제도 결부돼 있다. 무엇보다 낙태는 산모의 정신과 건강을 해친다.

이런 복잡다단한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는 게 콘돔이다. 콘돔은 원치 않은 임신을 낙태 같은 부작용 없이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콘돔은 일반적으로 감춰야 하는 물건으로 여겨진다. 콘돔을 청소년에게 팔면 안 된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학교에서 콘돔 교육을 하려다 학부모들이 항의해 무산된 일도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낙태율 1위인 동시에 콘돔 사용률 최하위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이 입은 ‘콘돔 티셔츠’가 논란과 반전을 불러왔다. 제이홉은 8일 인스타그램에 콘돔 무늬가 들어간 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 이 사진을 두고 일부 네티즌은 “선정적이어서 불편하다”고 비판했다.

역시 반전이 일어났다. 이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은 ‘콘돔 티셔츠’가 “안전하면서 긍정적이고 책임감 있는 성관계를 지지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제이홉이 옷으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한 게 처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졌다. 제이홉은 지난해 11월에는 ‘프리볼트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 브랜드는 판매 수익금을 전세계 소외 계층 어린이와 장애인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제이홉은 2019년에는 유방암 인식 개선을 위해 제작한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그가 옷으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 ‘콘돔 티셔츠’로 다시 한번 각인된 셈이다.

정혁준 문화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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