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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논폴로지’ 혹은 ‘개사과’ / 박용현

등록 2021-12-20 16:56수정 2021-12-21 02:32

미국의 언어학자인 에드윈 배티스텔라는 정치인 등 공적 인물들이 내놓는 ‘가짜 사과’의 수법들을 분석했다. 첫째, “실수가 빚어졌다”처럼 잘못을 저지른 주체를 숨기는 수동태 형식. 둘째, “만약에 그랬다면”이라는 단서를 다는 가정법 형식. 셋째, “누군가에게, 무엇이든”처럼 불명확한 대명사 사용. 넷째, 사과할 일 가운데 일부 사소한 측면만 언급하는 축소 수법. 다섯째,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 “사죄” 등의 표현 대신 두루뭉술한 “유감” “후회” 등의 서술어 선택. 이런 꼼수들을 피하고 간결하되 명확한 언어를 사용해야 공적인 사과가 의미를 갖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배티스텔라는 충고한다.

법적 분쟁과 사과의 관계를 연구한 데버라 리바이 변호사는 사과를 네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진심 없는 미사여구로 사과의 효과만 노리는 ‘전략적 사과’, 잘못을 변호하기 위한 목적의 ‘설명적 사과’, 지시나 압박에 떠밀려 내놓는 ‘형식적 사과’, 진심으로 책임을 인정하는 ‘해피엔딩 사과’ 등이다. 사과를 최대한 신속하게 하고, 명확한 사실 인정과 함께 실질적 시정·재발방지 조처를 밝히면 진정성 있는 사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 및 전문가들의 조언도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유독 사과와 관련한 논란을 많이 일으키고 있다. 최근 부인의 경력 허위 기재와 관련한 비판이 일자 사흘 만에 사과했다. 그 내용이나 형식, 태도 등으로 보아 어떤 수법과 유형의 사과였는지는 지켜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만하다. 더구나 이튿날에는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 “더는 코멘트하지 않겠다”며 자리를 떴다. 앞서 윤 후보는 ‘전두환 미화’ 발언을 한 뒤 사과 요구를 받자, 마지못해 사과한 날 개한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에스엔에스에 올리는 기상천외한 행동으로 비난을 샀다.

정치인은 우선적으로 사과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미덕이다. 국민은 진정한 사과와 거짓 사과를 구별하기 때문이다. 영어권에서는 가짜 사과를 일컫는 논폴로지(nonpology), 폭스폴로지(fauxpology) 같은 새로운 용어도 사용된다. 적절한 번역어로는 ‘개사과’가 떠오른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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