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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두 세상을 이어줄 대통령

등록 2021-12-16 19:05수정 2021-12-17 02:32

[통신원 칼럼] 김순배 | 칠레센트랄대학교 비교한국학연구소장

지난 13일 저녁, 칠레 대선 결선투표를 6일 앞두고 최종 토론이 벌어졌다. 가브리엘 보리치(35)와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55)가 맞붙었다. 두 후보는 양극화된 정치를 상징한다.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아니라 ‘극좌파’와 ‘극우파’로 간주된다. 2019년 말 대규모 시위에서 드러났듯 사회 변혁을 원하는 세력과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세력의 대립이다. 1990년 민주화 이후 집권해왔던 중도 세력은 그 사이에서 무너졌다.

두 후보의 지향은 분명히 달랐다. 보리치가 부자 증세를 통한 국가의 역할 강화를 말할 때, 카스트는 감세를 통한 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며 작은 정부를 제시했다. 보리치도 성장을 강조했지만, 더 공정한 분배를 함께 역설했다. 모두 안정을 말했지만 초점은 달랐다. 카스트는 성장을 위한 조건으로서 안정을 가리켰다. 그러면서 보리치가 내세운 개혁에 대한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데 주력했다. 반면 보리치가 말한 안정은 구조적 변화를 통해서, 사회갈등의 원인을 제거하는 데 맞춰졌다.

두명 모두 평화와 정의를 강조했다. 하지만 카스트는 2019년과 같은 과격한 시위가 통제되고 질서가 유지되며, 치안당국의 권위가 지켜지고 엄격한 처벌이 따르는 정의와 평화를 가리켰다. 보리치는 사회적 모순과 불평등을 바로잡고, 교육과 의료, 연금 등 기본권이 보장되는 존엄한 삶을 누릴 정의와 평화를 향했다.

두 후보의 이념은 충돌했다. 카스트는 보리치가 이끄는 좌파연합에 공산당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공격했다. ‘빨갱이’ 공세를 통해서, 급진적 개혁에 따른 혼란을 우려하는 보수층을 겨냥했다. 반면, 보리치는 동성결혼과 낙태에 반대하는 카스트가 다원주의 시대에 맞지 않는 극우적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카스트야말로 독재자 피노체트 지지자로 칠레에 위험한 존재라고 공격했다.

둘은 정반대편에 서 있었다. 하지만 며칠 전 두 후보의 선거 광고는 아이러니하게 모두 자유를 앞세웠다. 보리치의 자유는 차별과 불평등, 억압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자유에 가까웠다. 반면, 카스트의 자유는 선택의 자유, 방임의 자유를 상징한다. 카스트는 결선투표가 “공산주의와 자유 사이의 선택”이라고 주장해왔다.

두개의 이념만큼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 며칠 전 병원에서 만났던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칠레는 완전히 다른 두개의 세상이 존재합니다. 여기 사립병원에서는 하고 싶은 검사는 뭐든 할 수 있지만, 공공병원에서는 언제 자기 차례가 될지 모르는 수술을 한없이 기다립니다. 큰 병이라도 걸리면 전 재산을 다 날리죠. 그런데 이렇게 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만날 일이 거의 없답니다.”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영화 <기생충> 얘기를 먼저 꺼낸 의사는 한국의 빈부격차가 칠레와 닮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사립병원과 공공병원에서 번갈아 근무하는 이 의사는 의료권과 생명권마저 양극화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19일 대선 결선투표가 치러진다. 칠레의 민주화 이후 가장 중요한 역사적 선거라 여겨진다. 2019년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사회적 폭발’ 뒤, 국민투표를 통해서 헌법을 바꾸기로 결정하고 제헌회의를 구성하는 등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당선되든, 팽팽하게 나뉜 상하원 의회 구성을 고려할 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고 나가기 어려운 구조다. 대화와 타협은 불가피하다. 1차 투표에서는 카스트가 27.9%로 25.8%를 얻은 보리치에게 앞섰지만, 그 뒤 여론조사에서는 보리치가 2~14%포인트 앞섰다. 칠레 국민들은 어느 후보의 자유와 평화를 선택할까? 두 세상을 이어줄 새 대통령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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