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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책 속에 길이 있을까

등록 2021-11-18 18:35수정 2021-11-20 15:44

얀 다비츠, <공부 중인 학생>, 1628, 나무 위에 오일, 애슈몰리언 박물관, 옥스퍼드.
얀 다비츠, <공부 중인 학생>, 1628, 나무 위에 오일, 애슈몰리언 박물관, 옥스퍼드.

[크리틱] 이주은|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이 슬슬 거리로 나오기 시작하는 때다. 30년 전쯤에 학력고사라 불리던 대학 입시를 마친 다음날 목적 없이 집을 나와 거닐었던 나의 배회가 떠오른다. 인사동 거리 헌책방에 들어가서 시험이 끝난 기념으로 나달나달하고 누렇게 변색된 시집을 한 권 사보기도 했다. 표지 안쪽에 만년필 잉크가 물에 번진 글씨가 남겨져 있었다. 시집을 주고받은 이들 사이에 어떤 사연이 숨어 있기에, 혹시 눈물이라도 흘린 것은 아닐까 하고 세기말 젊은이다운 촉촉한 상상을 했었다. 요즘이라면 ‘밥 먹다 국물을 흘렸나’ 하며 찜찜하게 쳐다봤을 것이다.

그 시절 헌책방과는 달리, 이제는 중고책방에서도 거의 새것에 가까운 책들이 판매된다. 나는 인터넷서점에서 운영하는 중고책방에 책들을 종종 내다 파는데, 줄이 그어져 있지 않고 자필 이름이나 ‘증정’ 도장이 없어야 값을 쳐준다. 그래서 책을 샀다가 소장할 생각이 없으면 되도록 깨끗하게 읽는다. 내가 쓴 책을 지인에게 줄 때에도 서명은 하지 않는 편인데, 간혹 저자 친필이 없으면 섭섭해하는 사람에게만 뭐라도 써서 드린다. 상대가 나중에 그 책을 맘 편히 처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책을 버리려 내놓을 때 메모를 남겨준 저자와 친분을 끊는다는 기분이 들어 망설인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책장도 옷장처럼 정기적으로 정리해주어야 한다. 옷장에 용도별 옷들이 빼곡하게 차 있는데도 선뜻 꺼내 입고 나갈 옷이 없어 헤매듯이, 몇십년 동안 책장을 묵직하게 차지하고 있는 책들 중에 자주 꺼내 읽는 책이 몇권이나 있는지 한번 살펴보시라. 언젠가는 이 옷을 입을 날이 오겠지 하고 놔둬 보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책도 마찬가지다.

늘어나는 책을 감당할 수 없어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학자가 있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였던 로버트 버턴은 1621년에 초판을 쓴 <우울의 해부>에서 쏟아져 나오는 책에 대해 한탄했다. 글자를 계속 읽어야 하니 눈도 아프고, 또 책장을 쉬지 않고 넘기다 보니 손의 물기도 마른다며, 책이 지나치게 풍부한 것이 오히려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라고 결론짓는다.

과거에는 책을 소장한다는 것이 세상에 몇권 존재하지 않는 귀중한 원본을 가진다는 것을 뜻했는데, 대학교가 본격적으로 유럽 곳곳에 세워지는 13세기 무렵부터 그 의미가 달라지고 있었다. 대학생들은 학습량이 방대해졌고 필독서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대학마다 구내서점을 두었는데, 그곳에서 파는 책은 양피지에 쓴 필사본이 아닌 저렴한 종이 제본이었다고 한다. 어느덧 책이란 게 아끼는 물건이 아니라, 한구석에 쌓여가기만 하고 끝까지 정독하기도 어려운, 그렇다고 확 내다버리지도 못하는 허름한 골칫덩어리로 변해버린 것이다.

네덜란드의 얀 다비츠는 정물화 소재로 낡은 책 더미를 그리곤 했다. 1628년에 그린 <공부 중인 학생>에서도 책을 쌓아둔 책상이 보이고, 그 옆으로 팔꿈치를 접어 손에 얼굴을 괸 학생이 앉아 있다. 얼굴을 괸 자세는 우수에 잠긴 자세, 즉 ‘멜랑콜리 포즈’라고 부르는데, 버턴이 쓴 <우울의 해부> 책 표지에도 그 포즈를 하고 있는 사람이 두번 등장한다.

그런데 버턴의 우울과 다비츠의 우울은 좀 다른 느낌이 든다. 버턴의 경우는 인간이 무한한 지식을 정복하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 반면, 다비츠가 묘사한 학생은 온갖 책을 앞에 두고도 아무런 비전이 보이지 않아 답답한 심경인 듯하다. 도대체 누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회의의 늪에 빠져 허공을 바라보는 400년 전 그림 속 대학생을 보며, 수능 수험생들이 맞이할 미래가 아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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