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군중들 앞에서 연설하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이세영|논설위원
최악의 여름이었다. ‘분신 정국’으로 명명된 5월의 장기 시위가 참담한 패배로 막 내린 뒤 나처럼 족보 없는 변두리 운동권들은 극심한 회의와 무력감에 사로잡혀 방학을 맞았다. 뒤숭숭한 마음을 다잡아볼 작정으로 에어컨 바람 잘 드는 중앙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학교 앞 사회과학 서점에서 산 2000원짜리 소책자를 호기롭게 펼쳐 잡았다. 연회색 표지엔 ‘임박한 파국,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보랏빛 명조 활자가 큼지막한 호수로 박혀 있었는데, 뭔가 징후적이면서 비장함마저 풍기는 책 제목이 스물을 갓 넘긴 2년차 대학생 마음에 꼭 들었다.
“피할 수 없는 파국이 러시아를 위협하고 있다.” 첫 줄부터 강렬했다. 다만 ‘운동의 위기’에 대한 과학적 처방을 담고 있을 거란 기대와 달리, 책은 위기상황에 맞선 무산계급의 즉각 행동과 산업·금융 국유화의 불가피성을 역설한 격문성 팸플릿에 가까웠다. 저자의 논변은 명료했다. 하지만 내가 과문했거나 신념이 부족했던 탓인지, 1917년 러시아와 1991년 한국의 정세적 접점 따위는 아무리 살펴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피할 수 없다던 그 ‘파국’이 얼마 안 가 정말로 와버렸다. 문제는 그게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의 파국이었다는 점이다. 8월 중순, 느닷없이 돌출한 보수파 쿠데타가 옐친과 인민들에게 무혈진압됐고, 그 여파로 소비에트연방은 속절없는 붕괴의 길로 치달았던 것이다.
다음 달이면 소련이 공식 해체된 지 꼭 30년이 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경합해온 사회(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자유의 실현’을 향해 전진해온 세계사가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선언과 달리, 1991년 이후의 세계사는 재난과 파국이 꼬리를 문 일상화된 비상사태로 스스로를 드러냈다. 금융화·세계화 국면에 진입한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세계 곳곳에 긴축과 복지 축소, 실업과 불안정 노동을 확산시키며 삶의 위기를 가중시켰다. 폭력과 추방, 대량학살의 지옥도를 낳은 인종주의와 근본주의의 발흥, 종말적 재앙 상태로 치닫는 기후위기는 또 어떤가.
눈여겨볼 사실은 30년 전 소련 몰락과 함께 세계사의 무대 뒤로 퇴장한 공산주의가 여기저기서 부활의 신호를 타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위기가 인류의 파멸과 지구생태계 전반의 붕괴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공포와 위기감이 확산된 결과다. 여기엔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국가의 적극적 개입과 통제가 효과를 발휘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미봉적이고 단기 효능마저 의심스러워 보이는 ‘그린뉴딜’이나 정치적 이행 전략이 부재한 ‘탈성장’ 프로젝트에 기대를 거느니, 내전과 제국주의 간섭기의 소련을 체제 붕괴 위기에서 탈출시킨 ‘전시 공산주의 모델’에서 ‘화석 자본주의’를 넘어설 체제 전환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생태 마르크스주의자 이언 앵거스, 안드레아스 말름 등의 작업이 여기에 속한다.
국가 권력을 장악한 뒤 공적 소유와 투자를 늘리고, 다양한 계획과 통제 수단을 활용해 석탄 발전 중단, 대규모 항공 운항 억제 등의 비상조치를 즉각 실행에 옮기자는 ‘생태적 전시 공산주의’의 논쟁적 주장에 누군가는 거부감을 넘어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전시 공산주의에서 스탈린 독재로 이어진 소련 역사를 보면 그 귀착지가 ‘생태 전체주의’(에코 파시즘)가 될 것이란 우려를 품는 것도 무리가 아닌 탓이다.
그러나 관료적 이성과 기업의 선의에 기대어 현상의 점진적 개선을 추구하기에 눈앞의 상황은 너무도 재앙적이다. 지난달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는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한다는 데만 합의했을 뿐, 탄소중립 시점을 확정짓는 데는 실패했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폐막을 앞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역시 현재로선 실효성 없는 말잔치에 머물 가능성이 농후하다. 매년 200개가 넘는 나라의 대표들이 모여 30년 가까이 협상을 이어왔는데도 온실가스 증가를 억제하는 데 실패했다면, 합의된 관행과 사고틀을 벗어난 파격적 상상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까. 근거 없는 낙관과 개별적 이기심에 붙들려 과감한 전환을 주저하는 이들에게, 한동안 전세계 유산계급의 공포이자 악몽이었을 러시아 공산주의자의 한 세기 전 물음은 여전히 의미가 유효하다. 임박한 파국,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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