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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다 죽기 전에 그만해!

등록 2021-11-04 18:17수정 2021-11-05 02:32

인류 역사를 보면 극소수가 한정된 자원을 독식하는 현상, 즉 ‘불평등’에 사람들이 격렬히 저항해왔음을 발견하게 된다. 왜일까? 부자를 보면 배알이 뒤틀려서? 그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불평등이 모두를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박권일|사회비평가

엄청나게 돈이 많은 부자들은 생각도 비슷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벤처투자자이자 억만장자인 닉 하나우어는 부자들이 스스로 자랑하는 것만큼 세상에 기여하진 못한다는 사실을 폭로한 ‘내부 고발자’다. 그는 2013년 미 상원 경제정책 청문회에 출두해서 이렇게 말했다. “부자들은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음으로써 부자가 됩니다. 사업 해본 사람이면 고용을 늘리는 게 마지막 수단이고, 고객이 늘어나 꼭 필요할 때만 하는 조치임을 누구나 압니다. 부자들은 버는 만큼 수요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저는 중간임금의 1천배를 벌지만 1천배만큼 물건을 사진 않습니다. 저희 가족은 차를 세 대 소유하고 있습니다, 3천대가 아니고요.” 한국 역시 재벌이나 소위 ‘슈퍼리치’의 고용효과는 크지 않다. 통계청의 2017년 ‘영리법인 기업체 행정통계’를 보면 재벌의 고용은 전체 고용의 13% 수준이다.

어떤 직업은 늘 과대평가되는 반면, 어떤 직업은 늘 과소평가된다. 탁월한 인류학자이자 월스트리트 시위를 이끈 열정적 ‘운동권’이었던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잡지 <스트라이크> 기고문에서 그렇게 과대평가된 직업을 “허튼 직업”(bullshit job)이라 불렀다. 좀 길지만, 퇴화해버린 우리의 시민윤리를 일깨우는 주장이기에 인용해본다.

“우리 사회에는 한 사람의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명백하게 이익이 될수록 더 적은 보수를 받기 쉽다는 일반법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필요한 일인지 객관적인 기준을 대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모종의 감각을 가져볼 수는 있습니다. 어떤 계급의 사람들이 사라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간호사, 폐품 수집인, 기계공에 대해 말해봅시다. 만약 그들이 연기처럼 사라진다면 그 결과는 치명적일 테지요. 교사나 부두 노동자가 없는 세상은 곧 곤경에 빠질 것이고, 과학소설 작가나 스카(ska) 뮤지션이 없어져도 우린 분명 아쉬워질 겁니다. 하지만 사모펀드 시이오(CEO), 로비스트, 홍보 연구원, 보험사, 텔레마케터, 집달관, 법률 컨설턴트 등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서 인류가 어떤 고통을 겪게 될지는 그리 분명하지 않습니다. 소수의 예외(의사 등)를 제외하고 이 규칙은 놀라우리만치 잘 들어맞습니다.”(번역은 필자)

인류 역사를 보면 극소수가 한정된 자원을 독식하는 현상, 즉 ‘불평등’에 사람들이 격렬히 저항해왔음을 발견하게 된다. 왜일까? 부자를 보면 배알이 뒤틀려서? 그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불평등이 모두를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회역학자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은 불평등한 국가의 시민이 평등한 국가 시민보다 약물에 중독될 확률, 살해당할 확률, 비만이 될 확률 등이 2배에서 10배 정도 높게 나타난단 사실을 발견했다. 불평등은 ‘심지어’ 경제성장에도 해롭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5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재분배 정책이 성장률을 떨어뜨린다는 증거는 희박하지만 불평등이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해롭다는 증거는 많다.”

불평등을 줄여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부의 집중을 장려할 이유는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몇해 전 아메리칸드림과 능력주의의 나라 미국에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2016년 미국 포틀랜드 시의회는 경영자의 과도한 연봉에 법인세를 더 부과하는 법안을 미국 최초로 도입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경영자의 연봉이 중간 직원 연봉의 100배를 넘어서면 법인세를 1만달러 인상하고 250배를 넘으면 2만5천달러 더 인상하게 된다.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이 법안을 가리켜 “불평등을 겨냥한 최초의 세금”이라며 “불평등을 탄소배출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로 보는 세금이라는 점에서 참신한 시도”라고 평했다. 이 법안은 최고임금을 중간임금 또는 최저임금과 연동시키는 이른바 ‘급여 비율 정치’(pay ratio politics)의 일종이다. 이는 영국에도 반향을 일으켜서 노동당은 국가가 정한 생활임금 또는 중간임금의 20배 이상 급여를 주는 기업에 추가로 과세하는 정책을 당 정책안에 포함시켰다.

지나친 부는 특권의 가장 큰 원천이다. 불평등과 능력주의에 기반을 둔 이 게임에는 미래가 없다. 최근 수년간 점점 많은 사람들이 “그만해, 이러면 다 죽어!”라고 외치며 행동에 나서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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