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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투도 없이 군인은 왜 죽는가

등록 2021-10-18 18:00수정 2021-10-19 02:34

지난 13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은 성전환수술을 받은 변희수 전 하사를 강제전역시킨 육군의 조처는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에 대해 “판결을 존중하며 항소 여부를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육군 제공
지난 13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은 성전환수술을 받은 변희수 전 하사를 강제전역시킨 육군의 조처는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에 대해 “판결을 존중하며 항소 여부를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육군 제공

[편집국에서] 임인택ㅣ스페셜콘텐츠부장

음경과 고환을 손상한 육군 기갑병과 변희수 하사를 심신장애로 강제전역시킨 군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지난 7일 판결을 지켜보며 몇가지를 새로 알게 되었다.

1. 군인의 음경, 고환 등이 손상된 사례 11건 중 9건을 군은 ‘계속복무’로 인정해왔다. (해당 기간이나 각기 손상 사유, 정도는 알 수 없었으나) 음경, 고환으로 복무 능력이 유지되는 건 아니란 얘기다.

2. 병역법(시행령)상 트랜스남성(“가족관계등록부상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별이 정정된 사람”)은 전시근로 역으로 편입된다. 사실상 평시만 병역을 면제한단 얘기다.

현역 복무 능력이 육체적 전투 수행만이 아닌, 기술·정보·사이버전 등 다양한 양상에 맞선 종합적 전투 수행 능력을 뜻하고, 그 맥락에서 현역 복무가 불가능할 때 ‘전투력 상실’로 본다는 것을 우리 군이 모를 리 없다. 그때의 전역은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평시의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고, ‘군에 절대 안 된다’는 트랜스젠더도 평시와 전시는 갈라쳐 이용하는 등의 편의적 차별, 그러면서 ‘전투 능력’을 명분 삼아 차별을 재량껏 지속하겠다는 군의 야만성이다.

‘전역처분 취소’ 소식을 듣지 못한 변 하사가 세상과 작별(3월) 전 정작 들어야 했던 말이 있다. 그러니까 올 2월, 육군이 피고로 재판부에 제출한 54쪽짜리 준비서면에 마치 정언명령과도 같이 반복해 언술되는, “군의 존립 목적”.

“한 개인의 인권만을 위해 그 외 다수 인원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 또한 … 구성원 전체의 사기를 강력하게 유지하여 군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는 군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그 존립 목적과도 맞지 않다.”

“(성전환 수술 후 진료 여건을 보장하는 경우) 개인의 전투력 발휘의 제한이 결국 조직 전체의 전투력 발휘의 제한으로까지 이어지게 될 것인데, 이는 군의 존립 목적과도 상충된다는 점은 자명하다.”

줄이자면, 트랜스젠더 변 하사의 복무는 군의 존립 목적까지 해친다. 임무 수행을 위한 전투력 유지가 군의 존재 목적이란 명제를 누군들 거역하겠는가. 그럼에도 변희수의 존재가 어떻게 다른 군인들의 인권을 무시하는지, 사기는 왜, 마침내 전투력은 어떻게 ‘손상’되는지 변론들을 되읽어도 납득하기 어려웠으므로(지난해 말 ‘전역처분=인권침해’ 결정을 내린 인권위도 납득 못 했다), 나는 지금껏 아니 최근 워낙 군이 군인들의 인권을 짓밟고 면피하기 바빴던데다 세계 10위의 국방비로도 밥 하나 제대로 먹이기 어려워 사기는 바닥이며, ‘특수병과’나 되는 양 잊을 만하면 터지는 군납비리 따위로 전투력마저 위기인 터, 국민들이 ‘그런 군 뭐 하러 있느냐’며 존재 의의를 실로 의심할 지경에서의 기우성 변론 정도로 이해해보기로 했다. 그게 아니라면…, 저다지도 무지하고 대책 없이 혐오로만 가득한 조직이 아무렴 2021년 우리 군일 순 없다.

부대장도 여단장, 군단장도 변희수의 성전환 수술 후를 지지 응원했다는 것은 전투 단위의 일원으로 그의 복무가 충분했음을 전제하게 한다. 하지만 소송 중 군은 변희수와의 공동생활이 다른 조직원의 희생을 강요한다며 “원고의 행복추구권만을 고려해 다른 이들의 행복추구권을 간과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1심 패소 뒤 항소를 검토 중이라 말한 이유일 거다.

우리 군은 이처럼 ‘섬세’하여, 공군 여중사의 성폭력 후 죽음으로, 해군 여중사의 성폭력 후 죽음, 급식 부실, 청해부대 집단감염, 귀순자 경계 실패 등으로 서욱 국방부 장관이 국민에게 사과한 ‘사건’만 올해 다섯이다. 지난달 말 공군 중사의 아버지는 “더는 우리 아이의 괴로웠던 마음을 묻고 갈 수가 없다. (해서) 용기를 냈다”고, 떨며 성폭력 피해와 군의 늑장·부실 대응으로 죽음을 택한 딸의 이름 ‘이예람’과 사진을 공개했다. 가해자 무리 외 초동수사 관계자와 지휘부엔 죄다 면죄부를 준 군 앞에 구천의 딸을 불러세운 아비의 심정은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로도 헤아리긴 어렵다. 승소 뒤에도 침묵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더 가늠키 어렵다.

군이 알고 있는 행복, 군이 아는 사기·미션, 군이 아는 존립 목적과 우리가 아는 것은 다른가. 그렇지 않다면 왜 군은 전투도 없이 군인들을 죽이는가, 2차 가해로 불명예로 그리고 또 죽이는가.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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