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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코로나 백신 휴가마저 서러운 비정규직

등록 2021-10-12 18:03수정 2021-10-13 02:33

경남 거제 ㄷ병원에 붙어 있는 백신 휴가 안내문.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제공
경남 거제 ㄷ병원에 붙어 있는 백신 휴가 안내문.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제공

[전국 프리즘] 최상원ㅣ전국팀 선임기자

지난 8월17일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에 이어, 6주 뒤인 지난달 28일 2차 접종을 했다. 1차 접종 때는 백신을 맞은 팔에 이틀 정도 약간의 통증을 느꼈을 뿐인데, 2차 접종 때는 사나흘 동안 묵직한 통증과 함께 몸살 증세에 시달렸다. 증세가 약하건 심하건 상관없이 1차 접종과 2차 접종 때 각각 이틀씩 유급휴가를 받았다.

백신 접종 후유증이 완전히 사라질 즈음인 이달 초 경남 거제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조선소 노동자 한명이 백신을 맞은 다음날 숨졌다는 얘기였다.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도장공으로 일하던 ㄱ(57·여)씨는 지난달 17일 오후 3시께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했다. 대우조선해양 인근 ㄷ병원에는 “대우조선해양㈜ 직원은 코로나 예방접종 완료 문자를 캡쳐하여 담당 반장에게 보내주시면 근태 인정됩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면 유급으로 백신 휴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ㄱ씨는 유급휴가를 받지 못했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지만, 정규직이 아니라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다. 백신 휴가 안내문에 적힌 ‘대우조선해양 직원’에 비정규직은 포함되지 않았다.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백신 휴가마저 차별받고 있다. 연차휴가라도 쓸 수 있는 노동자는 그나마 다행이다. 연차휴가마저 없는 일당제 노동자는 쉬는 날 임금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백신 후유증으로 아파도 웬만하면 참고 일해야 한다”고 비정규직의 백신 휴가 실태를 설명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주로 금요일 오후에 백신을 맞는다. 혹시라도 후유증으로 아프면 토·일요일 쉴 수 있기 때문이다. ㄱ씨도 금요일 오후 집 근처 의원에서 백신을 맞았고, 다음날 잠을 자던 도중 통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숨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코로나 백신 접종 이상 반응을 조사한 결과, 접종자의 32.8%가 통증·근육통·피로감·두통·발열 등 증세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증세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해서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백신 휴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두부 자르듯 나눈다. 대우조선해양만의 일도 아니다. 특수고용직, 택배·수리기사 등 백신 휴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숱하다.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지난 4월1일부터 중앙사고수습본부는 국민이 안심하고 예방접종을 할 수 있도록 ‘백신 휴가 활성화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백신 휴가는 접종자의 신청만으로 주어진다. 의사 소견서는 필요 없다. 접종 당일 이동 등 접종에 필요한 시간에는 공가나 유급휴가 등을 적용할 것을 권고한다. 백신 접종 후 일반적으로 12시간 이내에 이상 반응이 시작되는 점을 고려해, 접종 다음날 하루 휴가를 사용한다. 이상 반응이 있으면 추가로 하루 더 사용할 수 있다. 기업 등 민간 부문에도 백신 휴가는 임금 손실이 없도록 별도 유급휴가로 부여하거나, 병가 제도가 있으면 병가를 활용하도록 권고했다. 이에 맞춰 고용노동부는 대응지침을 만들어 사업장들에 나눠줬고,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관련 단체에 협조를 요청했다.

‘백신 휴가 활성화 방안’ 어디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은 없다. 그런데도 백신 휴가를 유급으로 보장받는 노동자는 사실상 정규직으로 한정된다. 비정규직이 백신 휴가마저 차별받는 것은 백신 휴가가 의무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이기 때문이다. 백신 휴가를 보장해주지 않아도 고용주에게 불이익은 없다. 정규직과 같은 현장에서 같은 일 또는 더 험한 일을 하고도 임금·복지 등에서 차별받는 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의 현실이다. 이젠 비정규직 차별 상황에 백신 휴가가 하나 더 보태졌다. 이마저 ‘노동시장 유연성’이라고 눙친다면, 비정규직은 서럽고 또 서러울 뿐이다.

ㄱ씨의 사망 원인과 백신 접종의 관련성은 조사 중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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