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미래로 가는 여러가지 길을 모색할 여지를 없애버렸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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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미래] 곽노필ㅣ콘텐츠기획팀 선임기자
요즘 미래학자들은 미래학을 선택한 보람을 느낄까. 누구랄 것 없이 인류의 미래를 입에 올리는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보통 미래를 설계할 땐 먼저 가능한 여러 가지 미래를 그려본다. 그래서 영어권에선 미래를 말할 때 일부러 복수형(futures)을 쓰곤 한다. 하지만 모처럼 일고 있는 지금의 미래 바람엔 선택지가 없다. 기후위기가 다른 미래의 여지를 날려버렸다. 지난봄 10개국 청소년(16~25살) 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청소년 10명 중 6명이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 4분의 3은 그래서 미래를 두려워했고, 절반 이상(56%)은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는 미래를 번영이 아닌 생존의 영역으로 몰아넣었다. 인류가 만든 생존 지침은 2050년 온실가스 배출 제로다. 앞으로 30년 동안 할 일은 이 목표와의 간극을 메꾸는 일이다. 그러자면 미래(앞)를 고정해 놓고 현재(뒤)를 돌아봐야 한다. 기후위기가 미래를 설계하는 방식까지 바꾼 셈이다.
30년 후 목표 지점에서 본 그 길은 어떻게 나 있을까? 이정표 구실을 할 몇 가지 핵심 지점이 있다. 무엇보다 에너지원을 바꿔야 한다. 인류는 에너지 소비량의 80% 이상을 화석연료에서 얻는다. 지구에 도착하는 태양에너지의 0.07%만 이용할 줄 알아도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분석은 화석연료에서 탈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둘째, 에너지를 덜 쓰는 사회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하지 않아도 사회가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지역화, 분산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가 확산시킨 원격 처리 시스템이 중요한 기능을 할 수 있다. 중앙집중화는 에너지 소비 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그 시스템을 떠받치는 데 또 다른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간다.
셋째, 자원 순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남아돌거나 버려지는 상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혁혁한 공을 세울 수 있다.
넷째, 경제관의 전환이 뒤따라줘야 한다. 기후위기 뒤에는 생산을 중심으로 경제 성과를 평가하는 지디피(GDP)가 있다. 지디피에선 자연 훼손이 경제의 밑거름 구실을 했다. 자연을 자산으로 간주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품 가격에 자연 훼손 비용을 포함시키면, 자연을 훼손할수록 경제가 압박을 받는다.
인류는 여전히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유엔이 191개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분석한 것을 보면, 2030년까지 50%(2010년 대비)를 줄여야 할 온실가스 배출량이 오히려 16% 늘어난다. 이대로라면 지구 온도는 21세기 말에 목표인 2도를 넘어 2.7도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기후위기는 종의 수명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본질이 명확히 드러난다. 중생대 지구의 포식자 공룡을 멸종시킨 결정타는 소행성 충돌이지만, 공룡은 사실 그 이전부터 쇠락하고 있었다. 지구 온도가 떨어지면서 기후가 급변함에 따라 종 다양성이 감소세로 돌아섰다. 2억5천만년 전 페름기 대멸종도 따지고 보면 극심한 기후변화의 결과였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명체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기후위기도 새로운 대멸종의 도화선일까? 이번엔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 기후변화의 원인이 인간이라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산업화 이후 기온 상승 폭 1.09도 중 1.07도를 인간의 몫으로 본다. 이는 인류가 마음만 먹으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뜻한다. 희망이 있다는 얘기다. 반전의 요체는 ‘절제’다.
“지구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할 만큼 주지만, 모든 사람의 탐욕을 충족시킬 만큼 주지는 않는다.” 요즘 들어 새삼 고개가 끄덕여지는 마하트마 간디의 경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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