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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포연이 걷힌 뒤 남는 것들

등록 2021-09-27 19:34수정 2021-09-28 02:34

[편집국에서] 최혜정ㅣ정치부장

눈을 감고 이번 대선의 열쇳말을 떠올려본다. 화천대유, 천화동인, 고발사주, 공약짬뽕, 카피닌자, 조국수홍… 아니 아니, 이런 거 말고 시대정신이나 간판 공약 같은 거. 다시 눈을 감아본다. 기본소득, 정권교체… 후보들에게 미안하지만 더 생각나는 게 없다. 대선 5개월을 앞두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여야의 대선 가도는 현재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험악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묘한 공통점도 존재한다. 뚜렷한 ‘대세’가 없다 보니 집안싸움이 격하다. 신입 정치인이 유력 주자인 야당에선 누가 누구 공약을 베꼈는지로 기싸움이 한창이다.

여기에 여야의 1위 주자들은 모두 검찰 수사 대상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민간업체에 과도한 배당금이 돌아간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재직 시절 검찰이 범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을 야당에 사주했다는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에 휩싸여 있다.

그러면서 서로 상대방을 ‘게이트’ 당사자로 지목하고 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이가 윤 전 총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검사)으로 사실상 특정됐고, 이 고발장은 ‘초안’의 형태로 정점식 의원을 거쳐 실제 고발로 이어졌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은 “메이저 언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라”, “(제보자가) 과거에 어떤 일을 벌였는지 여의도 판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며 깎아내렸고, 제보자 조성은씨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만남을 빌미로 이를 ‘박지원 게이트’라며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다. 검찰의 정치개입 의혹이 강하게 의심되고, 당시 책임자인 윤 전 총장한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데도 ‘정치공작’이라는 음모론 뒤에 숨은 것이다.

경선 기간 중 대장동 악재에 휘말린 이재명 지사는 ‘국민의힘 게이트’로 맞대응한다. “토건 비리 세력과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유착된 커넥션”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 성남시 대장동 민관 합동 개발사업에 참여한 투자자 일부가 과거 이 일대에서 민영개발을 추진해온 ‘업자’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곽상도 의원 아들이 퇴직금 50억원을 받아 간 사실도 드러나 정치권, 법조계 인사들이 연루된 대형 사건으로 확대될 조짐도 있다.

다만 대장동 논란의 핵심은 4천억원 넘는 개발사업 이익이 소수의 민간업자들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있다. 이 지사는 민관 공동 개발을 통해 5503억원을 환수했다며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 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민간 사업자의 막대한 불로소득을 방치한 설계가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선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또 ‘화천대유식’ 개발은 형식상 공공개발이어서 부동산 개발의 최대 리스크인 토지 매입과 인허가의 불확실성이 적었던 반면, 민간 택지로 분양돼 공공택지에 적용되는 ‘분양가 상한제’는 적용되지 않았다. 민간업자에게 분양 수익까지 얹어주는 구조였던 셈이다. 의도와 관계없이 ‘토건 비리 세력’의 막대한 수익을 성남시가 공영 개발로 보장해준 결과가 됐다. 이런 수익 구조를 설계한 성남도시개발공사의 배임 여부, 고위직 법조인들이 화천대유의 ‘방패막이’로 등장한 이유 등은 수사로 밝혀야겠지만, 당시 최종 결정권자인 이 지사 역시 소수 민간업자들의 불로소득을 묵인 또는 방치했다는 도의적 책임까지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고발 사주’와 ‘대장동 의혹’ 모두 공방 소재를 넘어 실체적 진실 규명이 필요한 사안이 되었다. 검찰이 정치에 개입하려는 시도나 서른한살 청년이 ‘아빠찬스’로 취업해 50억원의 퇴직금을 받은 일, 3억5천만원을 투자해 4천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챙긴 일 등은 너무나 ‘초현실적’이어서 국민들의 박탈감을 자극하는 소재임은 분명하다. 정치적 내전 상태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다만 언젠가 포연이 걷힌 자리에 무엇이 남을까. 스러져가는 자영업자들의 절규와 코로나19로 인한 불평등 확대, 기후위기와 4차 산업혁명 대응 등 우리의 ‘현실’과 ‘미래’가 차지할 자리는 있을까. “이번 대선보다 <오징어 게임>이 더 현실적”이라는 한 정치학자의 ‘농담’을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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