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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용산공원 구하기

등록 2021-09-03 04:59수정 2021-09-04 16:31

용산공원 기본설계(안) 조감도. 국토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제공
용산공원 기본설계(안) 조감도. 국토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제공

배정한|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외세와 식민지, 분단과 냉전 체제가 남긴 질곡의 땅 용산 미군기지(서울). 120년 만에 귀환하고 있는 불운한 땅의 상흔을 공원으로 치유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다각적인 노력을 펼쳐왔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용산가족공원, 전쟁기념관을 공원에 추가 편입했고, 해방촌에 맞붙은 옛 방위사업청과 군인아파트 부지도 공원 경계 안에 포함해 공원 면적을 243만㎡에서 무려 300만㎡로 넓혔다. 기지 동남쪽 장교 숙소 5단지를 개방해 시민 누구나 자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용산공원 국민참여단 300명의 숙의 토론과 워크숍을 지원했고, 참여단이 제출한 ‘7대 제안’은 올 연말까지 공원 조성계획안에 반영될 예정이다.

그러나 반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이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의 여백, 용산공원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최고위원은 용산공원 부지의 20%만 용적률 1000%로 초고층 초고밀 개발하면 분당 신도시에 맞먹는 8만 가구의 공공 임대주택을 지을 수 있다며 용산기지 개발론에 불을 지폈다. 앞뒤 돌아보지 않는 정치권의 여론몰이는 끝내 법안 발의로 이어졌다. 강 의원을 비롯한 여당 의원 15명은 8월3일, 반환 본체 부지 중 60만㎡에 주택 공급을 허용하는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개정안을 냈다. 법안은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용산공원에 아파트를 지어서는 안 되는, 그리고 지을 수도 없는 이유가 차고 넘치지만, 적어도 세 가지 문제만큼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아파트 개발 주장과 특별법 개정은 용산기지 공원화 역사 30년을 한순간에 뒤엎는 근시안적 매표 포퓰리즘이다. 기본구상, 기본계획, 설계공모, 기본설계로 이어진 30년간의 장기 계획, 기지 이전과 반환을 위한 지난한 협상, 전문가와 시민사회의 토론과 공론화를 거쳐 이미 사회적 합의의 강을 건넌 용산공원을 부동산 광풍의 희생양으로 삼을 수는 없다.

둘째, 공원 부지의 20%인 60만㎡에 1000% 용적률로 8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구상은 물리적으로 절대 실현할 수 없는 비전문적인 발상이다. 공급론자들은 삼각지의 청년주택 베르디움을 벤치마킹 사례로 내세운다. 베르디움은 용적률 900%, 37층짜리 두 동에 1000여 가구를 수용한다. 8만 가구를 용산공원에 욱여넣으려면 베르디움과 똑같은 열악한 거주 조건의 건물을 160동 넘게 지어야 한다. 상상조차 불가능한 그림이다. 국내 최대 규모 아파트 단지는 송파구 가락동의 헬리오시티인데, 부지 면적 40만㎡, 용적률 285%, 최고 35층 85개 동의 영구 음지 초과밀 환경이다. 그래 봤자 9500가구다.

셋째, 만약 용산구 전체 가구수 11만에 육박하는 8만 가구 아파트를 용산공원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도, 멈추지 않고 폭등하고 있는 현재의 주택 가격을 잡을 수 없다.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이 완료될 시점은 아무리 빨라야 2025년으로 전망된다. 부지 반환 절차, 환경 및 토양오염조사, 지하수와 토지 정화가 끝나려면 적어도 5년은 걸린다. 2030년대 초반에나 공원 조성을 시작할 수 있는 땅에 언제 무슨 수로 아파트를 가득 채워 2021년의 춤추는 부동산 시장을 잠재울 수 있을까.

용산기지 공원화는 단순히 300만㎡ 대형 녹지를 서울에 공급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국가적 프로젝트다. 근현대사의 공간적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자 왜곡된 도시 구조를 교정하는 일이며,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탄소중립 실험장을 구축하는 일이자 도시의 소중한 여백을 미래 세대에게 양보하는 일이다. 용산공원을 뿌리째 뒤흔드는 특별법 개정안에 반대한다. 어느 기사에 달린 댓글이 눈에 밟힌다. “차라리 43만㎡ 경복궁에 아파트를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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