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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나의 무슬림 친구들

등록 2021-09-02 13:17수정 2021-09-04 16:36

김소민 | 자유기고가

독일에 2년여 사는 동안 사귄 친구는 대개 무슬림이었다. 쇼라는 내가 38살에 만난 첫 이란 여자다. 그 친구는 뭔가 불합리하다 생각되면 갈매기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그건 공정하지 않아.” 하도 그 말을 자주 해서 친구들이 흉내 내기도 했다. 쇼라가 부러웠다. 나는 8739가지 다양한 이유로 눈치를 본다. 독일 방송사 직원 도움을 받은 날도 그랬다. 그날 나는 그 직원 기분을 띄운답시고 혼자 생난리를 쳤다. 반응은 시큰둥했다. 일을 한 그 독일인보다 추임새 넣은 내가 더 피곤한 거 같았다. 내가 하소연하자 쇼라가 말했다. “참 인생 힘들게 사네. 일단 남 기준을 네가 알 수가 없어. 그게 또 사람마다 다 달라. 그 기준에 맞춰 살려면 얼마나 힘들어. 난 내가 내 기준에만 맞으면 그걸로 됐어.”

임란은 자신이 예뻐 죽겠다는 남자다. 파키스탄 바하왈푸르 근처 시골 마을 출신인 그를 보며 나는 나르시시즘의 절대 경지에 오른 사람은 사랑스럽다는 걸 배웠다. 어느 날, 임란이 나한테 블로그를 만들어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했다. 자기 피아르(PR) 시대에 필수품이라며 자기 블로그를 보여줬다. 온통 임란 사진뿐이었다. 시시콜콜한 자랑으로 가득 찼다. 독일 방송사 도이체벨레 창립 기념으로 받은 컵 같은 것들이다. “하루에 몇명이나 들어와?” “아무도 안 들어오지.” 임란이 찡끗 웃었다. 영혼이 영롱한 그에겐 아무도 상처 줄 수 없다. 그는 코딱지만 한 학생 기숙사에서 부인 히나랑 살았는데 둘은 나를 자주 초대해줬다. 자꾸 뭘 먹였다. 그중 생선 커리는 먹다 죽고 싶은 그런 맛이었다. 다만 먹기 전에 임란의 온갖 자질구레한 성취를 들어야 했다. 그 말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은 부인 히나뿐이다. 프로그래머인 히나는 남편 임란을 한글 파일 다루듯 했다. 그냥 “임란”이라 부르며 미간을 좁히면 된다. “가? 말아?” “해? 말아?” 임란은 애처럼 뭐든 히나에게 물어댔고 히나는 그에게 가끔 짜증을 냈다.

내 사진첩에는 요르단 여자 하닌이 만들어 줬던 요구르트를 넣은 양고기 사진이 있다. 방글라데시 남자 압둘이랑 눈 덮인 산에 오른 날, 눈에 미친 압둘이 사진 100장을 찍어달라고 했던 기억도 있다. 내가 성질을 부리자 그가 한국어로 “친구, 친구” 하며 다가오는 동영상이 남아 있다. 이들이 무슬림을 대표하나? 물론 아니다. 무슬림을 대표하는 사람은 누군가? 탈레반인가? 이슬람국가(IS)인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뒤 난민 관련 기사에는 어김없이 이런 댓글들이 달린다. “무슬림은 폭력적” “잠재적 범죄자”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할 거다. 한국인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처럼.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한국 사람 대다수는 무슬림을 모른다.

사람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하고 그에 따라 특성 라벨을 붙이려는 욕망 안에 폭력의 씨앗은 이미 있다. 1735년 스웨덴 과학자 칼 폰 린네는 인간을 피부색에 따라 네 종류로 나눴다. 염운옥은 책 <낙인찍힌 몸>에서 “인종주의는 차이를 인지하고 분류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한다”고 썼다. 분류의 기준은 분류하는 자의 시선이며 이 시선이 권력이다.

만나면 편견이 사라질까? 고든 올포트는 책 <편견>에서 꼭 그렇지 않다고 썼다. 오다가다 만나는 거로는 되레 편견을 키울 수도 있다. 자기 편견에 맞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편견을 바꾸는 접촉에는 몇 가지 조건이 따른다. 동등한 지위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공동의 목표와 인간성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차별이 전제된 만남은 만남이 아니며 차별 없이 만날 수 있는 판을 까는 것이 공동체와 국가의 역할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차별금지법은 어떻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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