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타임라인이 중년 남녀들의 ‘20대 사진’들로 어지럽다. 각자가 엄선한 ‘리즈 시절’ 사진들이다. 리즈 시절이란 “외모, 인기, 실력 따위가 절정에 올라 가장 좋은 시기”를 일컫는 신조어다. 국립국어원의 사용자 참여형 온라인 국어사전 <우리말샘>은 그 어원을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선수 스미스가 축구 클럽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던 때를 이르던 말에서 비롯하였다”고 풀어놓았다.
‘리즈 사진’ 인증 바람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를 두고선 의견이 분분하다. 폐쇄됐던 싸이월드 미니홈피 서비스가 8월 초 부분 재개되면서 웹상에 묻혀있던 과거 사진들이 발굴된 게 시초라는 주장(싸이월드 기원설)과,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면서 유력 주자들이 ‘훈남·훈녀’ 시절 사진을 홍보용 에스엔에스 계정에 경쟁적으로 올린 게 발단이란 주장(대선 주자 선도설)이 경합한다. 진실이 무엇이든, 오늘도 인증 행렬에 올라타려는 중년 남녀들은 20~30년 전 ‘팽팽했던 젊음’을 공인받기 위해 낡아빠진 앨범 갈피를 열심히 뒤적이는 중이다.
반응은 다양하다. ‘페이스북이 중년 남녀의 탑골 공원이 됐다’고 키득대는 건 점잖은 축에 속한다. ‘치명적 바이러스 창궐’에 빗대거나 ‘586 꼰대들의 나르시시즘엔 적수가 없다’는 자기 풍자적 조소도 눈에 띈다. 이런 계면쩍음을 무릅쓰고 차려진 무대 위에 아득바득 오르려는 모습들을 보니, 단순한 ‘추억 공유’의 차원을 넘어선 실존의 절박감마저 느껴진다. ‘이것 보라구. 머리털 풍성하고, 눈매와 입꼬리도 안 처지고, 턱선도 살아 있고, 복부 라인도 유지되던 찬란했던 그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고.’
사회학자 엄기호는 “40~50대는 늙음과 더불어 비로소 몸의 중력을 체감하는 시기”라며 “이 세대가 몸이 새털만큼 가벼워 어디든 날아갈 수 있었던 20대 시절을 그리워 하는 건 특별할 게 없다”고 했다. 저변의 심리가 무엇이든, 평범한 누구라도 자신의 리즈 시절을 아무런 제약 없이 익명의 다중 앞에 과시하고 인증받게 된 것은 19세기 사진술이 21세기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과 만나 빚어낸 위대한 성취인 것만은 분명하다. 20일 뒤엔 나 역시 리즈 시절을 입증할 증거물을 찾아 먼지 쌓인 고향집 책꽂이를 뒤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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