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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뉴노멀-미래] 탄소가 무슨 죄라고

등록 2021-08-29 21:56수정 2021-08-30 02:36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제1실무그룹 보고서 표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제1실무그룹 보고서 표지.

곽노필 콘텐츠기획팀 선임기자

기후위기 세상에 탄소가 손가락질 대상이 돼버렸다. 탄소 문명으로 이만큼의 번영을 이룬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다.

인간의 잘못으로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사실 탄소는 우리에게 문명을 넘어 존재의 기반이다. 세상은 탄소를 함유한 물질과 그렇지 않은 물질로 나뉜다. 다른 원소와 잘 결합하는 성질 덕분에 탄소는 지구 시스템 형성의 중심이 됐다. 생명체의 핵심 물질이자 설계자이기도 하다. 인간의 피부와 장기는 탄소를 중심으로 한 구조물이다. 생명의 설계도 디엔에이(DNA)는 탄소 원자를 중심으로 한 탄소 띠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중심에 탄소 원자가 있다.

탄소 문명은 불을 다루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자연 순환 사이클 내에서 작동하던 탄소 문명은 석탄, 석유 산업의 등장으로 일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여년 만에 자신을 집어삼킬 화마를 만들고 말았다.

탄소 문제의 핵심은 자원 약탈이다. 재생에너지의 강점은 여기서 가장 자유로운 대안이라는 데 있다. 원전도 탄소를 연료로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화석연료와 마찬가지로 지구를 파헤쳐야 한다. 게다가 방사능 공포를 안고 있다. 핵 연료·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원전을 옹호하기 전에 이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원전 유혹의 본질은 욕망의 질주다.

나무 심기는 탄소를 흡수하니 좋은 대안이다. 하지만 배출한 뒤 제거하는 건 배출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지나친 녹색 정책은 오히려 생물 다양성을 위협한다. 세계 조림지의 상당수는 한두종의 나무로 구성돼 있다. 다양한 수종이 있는 산림은 단일 종의 숲보다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한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나무 심기 유혹의 본질은 나무를 생명체가 아닌 탄소 흡수원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대기에 입자를 뿌려 햇빛을 반사하는 태양 지구공학도 거론된다. 하지만 비상대책 이상이 되기 어렵다. 물 순환 사이클을 교란해 다른 곳의 기후 위험을 높일 수 있다.

탄소 중립이 절실하다면 그만큼 탄소에 덜 의존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애매모호한 ‘중립’ 대신 ‘배출 제로’를 지향하는 게 이치에 맞다. 예컨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는 짧은 기간에 가장 확실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으로 메탄 감축을 제안했다. 메탄은 수명이 10여년으로 짧은 대신 온난화지수가 이산화탄소의 수십배다. 그래서 배출량이 적은데도 지구 온난화의 4분의 1을 책임진다. 메탄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산업이 축산업이다. 소와 같은 반추동물 위에서 나오는 트림이 메탄이다. 식생활을 바꾸는 것이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과학자들은 메탄을 온실가스 나무에서 가장 낮게 매달린 과일에 비유한다.

지난해 과학자들은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생활 실천 방법 10가지를 제시했다. 가장 효과가 높은 5가지가 자동차 없이 지내기, 전기차 타기, 항공여행 줄이기, 재생에너지 쓰기, 대중교통 이용하기였다. 결국 먹고 이동하는 방식을 바꾸라는 얘기다.

하지만 탄소 배출 없는 삶이 그리 쉬운가? 혼자가 아닌 여럿이 시도하면 좀 수월해질 것이다. 한 실험에 따르면, 구성원 4명 중 1명이 새 관행이나 가치관을 받아들이면 전체가 바뀔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진 소수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채식을 선언하고 비행기와 결별하는 세계 유명인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국 지도층이나 엘리트 집단에서도 이런 이들이 나오기를 바란다. 선거 국면이니 바람 잡기에 좋은 시기다. 너 못났다고 헐뜯는 대신 ‘나는 이렇게 살겠다’고 선언하는 후보를 보고 싶다.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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